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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제로 Aug 11. 2023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아무래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장인어른인데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도가 심해서 1년에 150~200권 정도를 읽는다. 이만큼 책을 읽는다면 책을 고르는 데에 자기 취향이 중요하지 남의 추천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도서 추천 컨텐츠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올라오는 올 여름 베스트 뭐뭐 하는 리스트도 별로 참고하지 않는다. 장르 불문 한 가지를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면 대부분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사 심슨이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를 읽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읽지만 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란 참 어디 내놓기가 애매하다. 내가 이러저러한 책을 읽었는데요, 하면서 흥미를 돋울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이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요 헤헤' 하면서 이야기를 닫기는 싫다. 그렇다고 책 내용을 전부 이야기하면... 이야기하는 나야 재미있겠지만 그런 글을 누가 읽는단 말인가? 굳이 그 글을 읽어서 책 읽는 재미를 팍 쪼그려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여간 애매하지만, 남이 책 읽은 이야기만 골라서 읽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믿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해 본다. 스포일러는 당연히 있다. 죄송하지만 이 글의 소제목부터가 약간 스포일러다. 첫 소설은 할런 코벤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이다.



영어권 속담에 "표지만 보고 책을 평가하지 말라"는 게 있다던데, 책 만드는 게 일인 사람들은 저 속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몇십 년 독자의 삶을 살았으니 서점에 가서 표지만 봐도 내 취향일지 아닐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할런 코벤의 경우, 비채의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 할런 코벤의 작품이 몇 권이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 있고 유명한 작가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듭) 죄송스럽게도 표지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간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다가, 과거 <밀약>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서 절판된 이후 최근에야 복간된 책이 있다고 해서 한번 읽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은 세 시간만에 다 읽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의 주인공은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남자이고, 소아과 의사다. 그에게는 부인이 있었는데 연쇄살인범에게 끌려가서 죽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기본 세팅 아래 소설이 굴러간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알고보니'가 하나씩 나온다.


- 알고보니 부인은 죽은 게 아니었다. 나에게 메일을 막 보낸다. 죽은 여자가 메일을 보낸다!!

- 어떻게 죽은 부인이 나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해서 부인을 검시한 검시관을 찾아가는 등 백방으로 수소문하였다. 알고보니 그 시신은 부인의 시신이 아니었다. 헐 내 마누라가 살아있나봐!

- 그러면 나의 아내는 왜 죽은 것도 아니면서 자취를 감추었나? 알고보니 다니던 회사 사장(부잣집 아들놈)의 비밀을 알아내는 바람에 마누라는 위협을 당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아들놈도 죽었다(이 사람은 진짜 죽었다). 그리고 부잣집 아들놈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던 건달이 있었다.

- 문제의 부잣집에서는 귀한 아들 죽인 건달놈을 뼈도 못 추리게 할 거라고 분에 겨워 있었다. 그런데 이 건달이 무혐의로 풀려난다. 알고보니 나의 부인이 그 건달에게 알리바이 증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 그래서 문제의 부잣집에서 사람을 풀어, 아들의 원수를 너때문에 놓쳤잖아! 하면서 내 마누라를 죽이려고 했던 것인데, 알고보니 그 현장에 장인어른이 계셨던 것이다!!

- 장인어른은 자기 딸을 죽이려고 하는 '부잣집 쪽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딸을 어딘가로 도피시킨 다음, 적당한 제인 도우(신원 미확인의 여성 시신)를 구해서 딸이 죽은 것으로 위장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한 영원히 쫓길 테니까!

- 그런데 알고보니, 문제의 부잣집 귀한 아들을 죽인 건 바로 나!!


아니 어째서 이런 훌륭한 이야기를 장인어른 입장에서 쓰지 않은 것일까? 귀하게 키운 딸이 취업을 했는데 알고보니 사장이 쌩 양아치이고, 그걸 알게 된 사위가 참지 못하고 사장을 죽여 버리고, 부잣집에서 용의자를 찾다가 웬 건달 하나를 지목하니까 좋았는데 하필 딸이 그 건달놈의 알리바이 증언을 하고, 부잣집에서는 또 참지 못하고 딸을 죽이겠다고 들고, 그래서 딸 죽이러 온 놈들을 내가 죽였다!! 그리고 실은... 바깥사돈도 내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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