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에 찾아온 책과 문장, 그리고 작가들
밤은 고요하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고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다.
전에 살던 곳은 새벽까지 배달 오토바이 소리와 온갖 도시의 소음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도시답게 높게 솟은 건물과 아파트가 즐비했고,
한밤중에도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과 조명들로 사방이 환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베란다 뷰는 앞 동 아파트였는데,
저녁이면 빽빽한 집들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곤 했다.
그 불빛들을 보는 일은 외로웠다.
불이 켜진 창을 보면
저녁이 되어 집으로 하나, 둘 모여든 가족들과
그들이 식탁에 마주 앉은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집 안에 퍼지는 고소한 된장국 냄새와
각자 나름의 이유로 고단했을
하루의 안부를 묻는 소리.
그런 풍경을 떠올리고 있자면,
배달 음식으로 급하게 차려낸
일인 가구의 밥상은 한없이 초라해졌다.
혼자 사는 삶을 가장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밤의 도시를 밝히는 수많은 불빛과 화려한 조명은
나를 더 외롭게 했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배달 오토바이의 소음은
홀로 사는 집의 적막을 한층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밤, 원인 모를 초조함에 시달렸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베란다 앞을 수시로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언니네 집이 있고,
차로 15분만 가면 엄마 집이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촌도 근방에 살고 있었다.
누구든 찾아갈 수 있었고, 전화만 하면 만날 수 있었다.
지척이면 닿을 거리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지만,
일단 집에 들어가고 현관문이 닫히면,
그 모든 것들과 철저히 차단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치 홀로 컴컴한 우주를 부유하며,
불이 환하게 켜진 우주 정거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우주인이 된 것만 같았다.
전에 없던 고독이었다.
급기야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정시 칼퇴를 직장인의 낙이자 권리로 알던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나는 일부러 밤에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활용품은 모아두었다 꼭 밤에 분리수거를 했고,
양말과 속옷도 따로 빼뒀다가
굳이 손빨래를 해가며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밤에 약속을 잡는 날들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이사를 했다.
새로 옮긴 집은 조용한 시골에 새로 지은 임대 아파트였다.
배달이 되는 음식점도 별로 없었기에
그간 나를 괴롭혔던 배달 오토바이 소음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밤의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산을 면하고 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 아파트라
해가 지면서 시작된 어둠이 금세 온 사방을 촘촘하게 채웠다.
밤이면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고, 조용했다.
그 어둠과 적막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밤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문제의 답을 찾으려 쩔쩔매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자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던 일상에
책이 끼어드는 시간이 늘어났다.
혼자라는 사실은 여전했고,
밤은 길었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때때로 외로웠지만, 오히려 좋기까지 했다.
고요한 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책을 펼쳐 들면 마음의 어둠에 불이 켜졌다.
밖이 어두울수록 내 방만은 빛이 환했다.
어둡고 고요한 밤, 마음을 밝혀주고 소음 대신
벅찬 생각들로 주변을 채워준
책들과 그 책을 쓴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원인 모를 초조함에 서성이는 게 아니라,
책 속 문장이 도무지 떨쳐지지 않아서
너무 벅찬 나머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게 하는 책.
일어나 하염없이 서성이며 곱씹게 만드는 글들.
그 글들은 낙인처럼 마음에 찍혀,
결국 뭐라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혼자 담아두기에 벅차고 넘치기에
누군가에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무수한 어둠을 밝혀준 밤의 책과 작가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문장들.
읽으면 뭐라도 쓰게 만드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