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조작하는 여자 1편_미오기傳

활자로 곰국 끓이는 여자의 이야기

by 손여는

엄마는 솔직함을 가장 큰 미덕으로 아는 사람이다.


길고 고된 인생에 때때로 하얀 거짓말로 덧칠해야 하는순간이 필요하건만,

아무리 하얗더라도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고,

그것으로 얻은 가짜 평안보다

진실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는 게

‘진짜 인생’이라고 믿는 쪽이었다.

그런 엄마의 지나친 솔직함은

자식인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뾰족함에 찔려 피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중, 제법 출혈이 컸던 것 중 하나가 내 태몽에 관한 일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문득 내 태몽이 궁금해졌다.

비범한 태몽을 바탕으로 태어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고전소설을 배울 즈음이었나보다.


태몽을 묻는 내게 엄마는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것이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모양새였다.


나도 적당히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엄마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친자식인데, 태몽이 기억이 안 나는 게 말이 돼? 잘 생각해봐!”

계속되는 나의 독촉에 엄마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였을 줄이야.....

나는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태몽에 대해

결국 듣게 됐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사실 네 태몽은 말이지.

날개를 활짝 편 화려한 공작새가 있는 거야.

근데 잡으려고 가까이 갔더니

그게 공작새가 아니라 닭으로 변한 거 있지.”


닭이 되어버린 공작새라니....

나는 실망감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일단 내 태몽에 대한 봉인이 해제되고 나자,

꿩 대신 닭도 아닌,

공작새 대신 닭으로 변해버린

내 태몽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곤 했다.

“얘 태몽이 공작새인줄 알았는데, 닭이었잖아.”

이런 식이었다.


꿈은 꿈일 뿐,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인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나에게

공작새가 되려다 닭이 되어버린 태몽은

꼭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불길한 예언 같았다.

그것은 내 발목을 깨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성인이 된 후에도 뭔가가 어그러지면 어김없이 태몽을 소환하게 돼곤했다.

‘내 이럴줄 알았어.... 이번에는 잘 풀리나 했는데,

역시나! 그럼 그렇지.... 내 태몽이 그런데 뭐.’


비약이라면 비약이지만,

정말 매사에 이렇게 되기 십상이었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자 나는 태몽보다

그 태몽을 있는 그대로 이실직고한 엄마를 원망하기에 이른다.

‘엄마는... 어쩌자고 그렇게 안 좋은 태몽을 사실 그대로 딸한테 말한 걸까? 어휴.’


만약 나였더라면 그런 중요한 인생의 예언(?)을

거짓으로 한껏 꾸며서라도 좋게 말했을 거였다.


태몽은 그냥 개꿈이 아닌, 예지몽으로 여겨졌기에

그게 ‘꽝’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도

말짱 도루묵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태몽에 걸려 넘어졌다.

내 인생이 배배 꼬인 꽈배기처럼 자꾸만 꼬이는 것도 다 태몽 탓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태몽을 꾸고, 그것을 또 아무렇지 않게

발설해 버린 엄마 탓도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한 태몽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가 있었다.

바로 미오기전의 김미옥 선생이다.

미오기전의 김미옥 선생은

일찍이 태몽의 영향력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친구 아들의 태몽을 조작한다.

친구는 출산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아들이 중학생 때

자신은 태몽도 모른다며 울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김미옥 역시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기가 막힌 길몽을 꾸며낸다.

나는 용이 바다에서 승천하고 하늘에 무지개가 찬란했다고 소설을 썼다.
너는 크게 될 거라고 했는데 키가 182cm로 크게 됐다.

미오기전 197쪽

그녀는 친아들의 태몽에도 MSG를 팍팍 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아들이 태몽을 물어도 약간 덧칠을 해서 영웅호걸이 태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넌 뭐든지 끝까지 해낼 줄 알았다든가,
넌 하늘의 도움으로 잘 풀릴 거라든가, 들어서 기분 좋고 말해서 흥겨웠다.
하늘의 축복을 받았는데 까짓 불행쯤이야

미오기전 197쪽

그녀가 이렇듯 다른 사람의 태몽을

공갈빵처럼 부풀리고 조작한 이유는

정작 그녀 자신의 태몽이 몹시 불길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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