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되어버린 봉황을 보내주며
김미옥의 태몽은 흙탕물이 넘쳐 바다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친은 수시로 그 태몽을 들먹이며 재수 없는 년이라고 딸의 기를 죽였다.
아들 셋 있는 집에 막내딸로 태어난 김미옥은 모친으로부터 금쪽같은 세 아들보다 기가 센 딸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악담을 들어야 했다. 그 악담의 시작은 그녀의 흉몽이었다.
네 태몽은 흙탕물이 바다가 되는 불길한 것이라고 하질 않나, 너를 가지자 병에 걸리고 일도 잘 안 풀리고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고 하질 않나, 그러니 너는 잘될 일이 없으니 엄마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어릴 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잘 못 태어난 것 같아 미안했다.
미오기전 198쪽
어린 김미옥은 자신의 불길한 태몽을 수시로 들어야 했고, 그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것은 바로 모친이었다.
그녀의 모친은 딸의 불길한 태몽을 수시로 발설하는 것도 모자라, 자식에게 대놓고 재수가 없다고까지 했다.
그뿐인가. 앞으로도 잘 될 일이 없다는 말로 딸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저주한다. 그럼에도 기센 딸이 풀이 덜 죽은 것 같아 한술 더 뜬다.
엄마는 무리수를 두었는데 우리가 이리 못살게 된 건 다 네 탓이라고 했다. 나는 또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일으킬 테니 나를 대학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빗자루가 날아와서 맨발로 뛰었다. 엄마는 동네 여자들에게 저거 떼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미오기전 199쪽
집이 망하게 된 것마저도 딸 탓으로 돌리다 못해, 태어나기 전부터 딸을 떼려고 갖은 수를 썼다는 말로 단 한순간도 미옥을 원치 않았다는 것을 온 동네에 발설하기까지!
김미옥 선생의 모친은 팥쥐 엄마도 친딸에게는 차마 못 할 것 같은 무지막지한 저주를 퍼붓는다. 그에 비하면 우리 엄마가 내 태몽을 발설한 일은 애교 수준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그 말에 매여서, 좌절의 순간마다 애먼 태몽과 그 태몽을 알려준 엄마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김미옥의 비범함은 불길한 태몽을 시작으로 그녀 일생 전체에 대한 불운을 예고한 선전포고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태몽을 스스로 새롭게 해석하고, 그에 걸맞은 인생사를 써 내려간다.
어느 날 엄마는 또 아들들에게 길몽을 얘기하며 흉몽의 상징으로 나를 거론했다. 나는 처음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시험 범위인 세계 4대 문명을 얘기했다. ‘하천이 범람하며 비옥한 흙이 퇴적해 옥토가 되어 인간이 먹고사는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세계 4대 문명은 다 흙탕물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나는 흉몽이 아니라 길몽이다.
미오기전 198쪽
그녀는 모친의 상습적인(?) 악담과 저주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그것을 밑천으로 밟고 일어서 그녀 자신의 호언장담대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야 만다.
전국 지도에 점을 찍고 선으로 연결한 후, 스스로 공부한 결과대로 부동산에 투자한 김미옥은 제법 큰 돈을 벌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가정뿐 아니라 친정도 도와준다.
김미옥의 노모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원한 것도 나이 든 어머니를 곁에서 모신 것도 길몽의 상징이었던 세 아들이 아닌, 흉몽과 함께 태어난 막내딸이었다.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온 딸을 불행의 상징으로 여겼다. 나는 인간이 불행할 때 반드시 희망이 나타나는데 그게 나였을 거라고 했다. 잘난 척하는 딸에게 평소 같으면 소리를 질렀을 엄마가 웬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딸을 하나 더 낳을꺼로....” 엄마로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미오기전 200쪽
평생 세 아들을 자랑으로 알고 대놓고 편애를 일삼았던 김미옥의 모친은 딸이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복덩이이자 희망이었다는 것을 결국 인정한 것이다.
김미옥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읽은 책들의 독후감을 올리면서 유명해진 작가다.
자타공인 활자중독자인 그녀는 2019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연간 800여 권의 책을 읽고, 1일 1권 이상 읽기와 쓰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불세출의 서평가로 이름을 날렸고, 팬덤도 생겨났다.
독후감에 얹어 그녀의 굴곡진 삶을 굽이굽이 풀어놓자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책을 낸 것인 바로 미오기傳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친구로 만들었다. 내 과거를 푹 고아 우려낸 글, ‘곰국’은 이렇게 나왔다.
프롤로그 中
요즘에는 참 아픈 사람들이 많다.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된 지 오래고,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각자의 트라우마까지 어깨에 이고 있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고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엄마의 태몽 운운하는 나 또한 태몽 트라우마에 스스로를 가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트라우마가 내 발목을 잡는 것인지내가 그 트라우마를 붙들고 자꾸만 주저앉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인생이 온통 꽃밭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지천에 널린 것이 가시덩굴이고, 한고비를 겨우 넘으면 보란 듯이 다음 고비가 나타나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살면서 수시로 자빠지고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깨지고 넘어졌다고 영영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있고, 울면서 조금 지체해도 결국에는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차이는 그 둘 사이에서 생긴다.
자신의 이름에 떡하니 傳을 붙인 사람의 인생이 오죽했을까.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친엄마의 갖은 구박을 내내 피쳐링으로 달고 산 김미옥 작가는 결코 쉽지 않았을 인생을 시종일관 호쾌한 유머로 풀어낸다.
분명 가시밭길인데 매 순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날 리 만무하고,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기본값이 되어버린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전’으로 끝나는 고전소설들이 결국은 권선징악과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나듯이, 미오기전의 김미옥 선생처럼 꿋꿋하게, 꺾이지 않고 살다 보면 권선징악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미오기전을 읽으면 어느새 그런 희망을 품게 된다.
조작된 태몽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공작새가 되지 못한 닭을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꿈이야 어쨌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김미옥 작가처럼 스스로의 해석이지 않을까.
나처럼 스스로 허락한 상처에 사로잡힌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떤 사람이 어른일까. 무언가를 평하거나 따지는 것은 다섯 살짜리도 한다. 그러니 어른이란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집채보다 큰 삶의 파도가 덮쳐 올 때도 원망 대신, “그래. 그럴 수 있지. 살다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라고 받아들이며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사람.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그에게 닥친 삶은 독하게 매정했지만, 삶에 다정했던 그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책 뒷면에 적힌 추천서를 대신해 글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