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쓸모_<듣는 사람>,박연준

쓸모 없는 것들의 쓸모

by 손여는

가끔 지난 선택들을 곱씹는다. 사실 자주 그렇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엄청나게 잘못된 선택을 해 버린 게 아닐까?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


그래서 내 인생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이미 끝난 승부를 바둑판 위에서

한 수씩 다시 재현하는 것이다.


복기의 목적은 경기의

승패를 분석해 차후 승부에 밑거름을 삼는 것이다.


바둑의 복기와 달리 나의 복기에는

차후를 위한 밑거름이 부재한다.


대부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을 곱씹으며

안타까워하고 자책하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듣는 사람’


책을 집어 든 첫 번째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만 넘쳐나는 세상에서 기꺼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겠다’니...

그것도 그냥 들어주는 수준을 넘어서 ‘듣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하기까지 했으니,

오죽이나 잘 들어주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책을 훑어보니, ‘듣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오은영 선생님’ 같은 책이 아니었다.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을 ‘듣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전을 읽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서른아홉 권의 고전을 소개한다고 했다.


고전이라.... 고전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켜켜이 쌓인 먼지 냄새가 난다.


내 삶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요즘,

나는 먼 과거의 누군가가 쓴 두꺼운 하드커버의 긴 이야기가 아닌,

가볍고 직설적이며, 당장 적용 가능한 실용서를 원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책 뒤표지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머리를 한 대, 그것도 제대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수많은 잘못된 선택들로 완전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인생이면 어쩌지? 싶었는데

잘못된 길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걸을 때 얻는 가치가 또 있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던 9회 말 역전 홈런 같은 말이 아닌가.


해서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잘못된 길' 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고속도로에서 겪은 아찔한 실화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얼마 전 운전 중에 겪은 일입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길을 잘못 들뻔해 뒤늦게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을 옮겼습니다. 비상등을 길게 켜서 뒤차에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조금 후 뒤차가 옆으로 오더니 클랙슨을 울리며 창문을 내리라고 하더라고요. 신호 대기 때 창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합장을 하며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초보 운전자라 마음이 졸아든 상태였습니다. 상대 운전자는 젊은 남자였는데 제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봐요! 길을 잘못 들었으면 그냥 잘못 가세요! 위험하니까 계속 잘못 가시라고요!

저자는 그 말에 젊은 놈이 성격 한번 더럽네!

하고 그냥 넘기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계속 잘못 가라는 말을 목적지에 갈 때까지 곱씹는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길을 잘못 드는 것, 헤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덜 다치는 거라는 것을.

거기에 빗대어 고전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 게 있을까요?"

그 뒤에 바로 처음에 나를 사로잡았던 문장이 이어진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 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잘못된, 혹은 잘못 들어선 길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조지 오웰은 완벽한 인간됨을 추구한 자가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명분과 자기 신의를 앞세워 가족에게 상처를 준 간디의 한계를 꼬집었다. 그는 인간됨의 본질이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P. 117 ~118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태도가

잘못된 선택을 경계하고,

완벽한 인간이 될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패배할 줄 알면서도 그것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태도라니....


신선하고 아찔했다.


죽음에 대한 시선 또한 그렇다.


"할머니는 언제 죽어?"
"얼마 안 남았지, 하지만 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P. 169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에 나오는 대사다.


엄마 없이 할머니의 손에 자란 소피아에게 할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손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니.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상실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듯,

서로의 죽음이 상관없는 일인 것도 진실이라고 말한다.


진짜 무지막지한 진실이다.


죽음을 앞둔 가족에게 실제로 듣게 된다면,

눈물이 쏙 들어가면서 이 사람 대문자 T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여전히 가족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서

한층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그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내 삶은 뒤집혔고, 무너져 내렸으며,

지금도 겨우 버티며 다시 쌓아 올리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큰 슬픔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엄마에게

저 말을 한다면, 당장 나쁜 년, 독한 년 소리와 함께 등짝을 맞을 것이다.


작가가 소개하는 서른아홉 권의 고전 중에 읽은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다.

각각의 책 소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보통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에세이에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이야기는 쏙 빼고,

오직 책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있다.


작가의 경험은 서문을 대신한 '작가의 말'이 전부다.

철저한 거리두기가 아쉽다가도 책 속에 담긴 명문장에 마음이 홀려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시인이나 예술가는 효용 가치가 없기에 가족이나 사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P.212

저자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의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 나오는 문구다.


작가는 이 책을 헤매고 싶어서,

명료한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거닐고 싶어서 읽는다고 한다.


나는 위로가 필요할 때 ’듣는 사람‘을 다시 집어들 것 같다.


아무 효용 없는 것들의 가치와

모든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인생의 쓸모에 대하여....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이 책을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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