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러의 꿈
돈을 벌어 가장 좋은 점은
나 스스로를 미술 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꿈 많고, 미래가 창창하던 초딩시절.
나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교내 대회는 물론이고,
학교 대표로 뽑혀서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빛나는 상장과 어른들의 칭찬에 한껏 의기양양해진 나는 그림과 글 중,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둘 중 어떤 것이 됐든, 일단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만 하면, 머지않아 그 분야에서 이름을 크게 떨치고, 돈도 많이 벌고, 엄청나게 성공 할 것이라는 것.
사실, 정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가진 재능이 얼마나 널리고 널린, 그야말로 하찮고 애매한 재능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행복은 짧고, 현실은 무지막지했다.
글은 컴퓨터만 있으면 쓸 수 있는 것이라 내 글이라는 것을 쓰긴 썼다. 그러나 그림은 달랐다.
그림을 그리려면, 붓, 도화지, 물감, 이젤 등등
너무 많은 도구가 필요했다.
나는 펜으로 노트에 낙서를 하는 선에서 그림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림은 나에게 가보지 못한 분야라서 더 아쉽고 오래도록 미련이 남는 분야였다.
비교적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긴 작년 봄,
나는 그간의 한풀이를 하고자
근처 미술학원을 다니게 됐다.
시작은 간단한 도형을 그리는 연필 소묘였다.
열심히 빈 칸을 채우고 있는내게,
선생님은 감각이 남다르다며
혹시 미술을 전공했는지 물었다.
그 말에 나는 희열을 느꼈다.
전공자가 보기에도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구나!
한달 뒤, 새로 옮긴 미술학원에서도 두 명의 선생님이
각각 내게 미술을 따로 배우거나, 전공을 했는지 물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는 좋은 동기가 됐다.
그러나 점점 그 말에 맞춰 진짜 전공자처럼 잘 그리려고 하자, 그림 그리는 일은 어느새 괴로운 숙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즐겁던 마음은 어디가고,
나는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아이처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학원을 그만둘까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바라는 것도 아닌, 내가 그저 원해서, 좋아해서, 미련이 남아서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상상화를 자유롭게 그리던 때로,
학급일보에 넣을 개구리가 주인공인 네칸 만화를 신나게 그리던 때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림이 다시 조금씩 즐거워 지기 시작했다.
소복이 작가의 <만화 그리는 법>이라는 책은 비전공자가 만화가로 살게 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자신처럼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그림체를 찾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밥 벌이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비법은 대단한 게 아니다.
매일 꾸준히, 엉덩이의 힘으로 버텨가며 만화를 그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히는 순간은 온다.
그럴때의 해결책은 결말이나 뒷 내용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처음 연극을 쓸 때가 생각났다.
작가로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에 가득찼던 그 시절,
나는 결말이나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썼다.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 처음 떠오른 장면을 시작으로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쓰다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결말을 향해 흘러갔고, 나는 어느새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연극 작가로 입봉을 하고 난 뒤부터,
글을 쓰는게 더 어려워졌다.
나는 쓰기라는 행위보다,
생각하는데 더 시간을 들였다.
내 이야기가 개연성이 있는지, 재미는 있는지, 반전이 기가 막힌지 고민했고,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은 사라졌고, 글쓰기는 멀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글쓰기로 매번 도돌이표처럼 되돌아 오고야 마는 이유.
나 역시 어떤 회사를 다니던지,
회사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결국, 언제 어떻게 그만둘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복이 작가는 만화를 그리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만화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 쓰다가 말아서인지
아직 인생이 달라지는 지점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다보면,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할 것!
항상 생각이 많아서, 고민이 많아서 자꾸 주저하는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다.
애매한 재능에 대한 한탄은 지금까지로도 충분하다.
타인의 칭찬과 인정이 아닌, 스스로가 대견해 질 수 있게, 엉덩이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초등학교 시절 내가 꿈꾸었던,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