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권태로운 당신에게
일상은 쉽게 권태로워진다.
권태가 무탈함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어떤 '사건' 혹은 '사고'가 끼어들기 전까지 불만은 계속된다.
타의에 따른 고통을 겪지 않고, 자의적으로 일상에 대한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스스로 변화를 일구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있다.
남자의 첫 집 연대기도 그렇게 시작된다.
30대 중반에 미혼인 남자는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가정을 일궈 독립하는데 자신은 여전히 어느 것 하나 이룬 것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한다.
내 혼란은 여전했다. 머릿속에 주파수를 못 잡은 아날로그 라디오의 치직거리는 소리가 늘 울리는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내 일에 재미를 느꼈고 당시의 동료들도 좋았지만 업계는 침체되고 있었고 내 일 솜씨가 느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남들의 삶이 부러워 보였다.
p.26~27
자신의 삶에 불만이 생기자 자연스레 남들의 삶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는 고통을 증폭시킨다.
나름 보람이라고 생각해 온 일도 휘청거리고, 사랑하는사람과는 헤어졌고, 통장은 '텅장'이 된 지 오래.
뭔가가 절실한 순간이었다. 그때 남자는 운명처럼 어떤 '글귀'를 보게 된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사는 것을 바꾸는 것,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새로운 결심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이 켄이치 <난문쾌답> 中
변화가 필요했던 남자는 사람, 장소, 시간 중에 장소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하필 추운 겨울이었다.
그렇게 한겨울 한파보다 매서운 남자의 <첫 집 연대기>가 시작된다.
돈이 없다고 취향까지 없겠는가. 취향에는 아무 죄가 없다.
문제는 남자의 직업이 하필 잡지 에디터로 남들보다 좋은 물건들을 끊임없이 접하는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었고, 이에 물건에 대한 안목이 남들보다 월등하게 높았다는 것.
남다른 안목은 확고한 취향을 구축했고, 그것을 없는 형편에 실현하고자 하니, 몸이 고생할 수밖에...
보증금 500에 월세 35.
남자는 첫 독립을 위해 서대문 어딘가에 단독주택 2층 월세방을 얻는다.
'싼 가격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남자의 말처럼, 보증금에 월세마저 싼 단독주택 2층은 하자투성이었다. 그래도 끝내 취향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성격대로 집을 고쳐 살기로 마음 먹는다.
그와 동시에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남자의 고집스러운 취향에 대한 굳건한 신념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 중, 스위스 제네바에서 의자를 사서 한국까지 가져오는 에피소드는 이 책에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은 부족한데 취향은 또 확고한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생담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남자는 벼룩시장에서 한화 4만 원짜리 의자를 발견한다. 의자가 마음에 쏙 든 남자는 간단히 그 의자를 사서 포장 후 한국으로 배송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위스 우체국에는 의자를 포장할 크기의 박스가 없었고, 남자는 박스를 찾아 스위스 시내를 전전하게 된다.
백화점에도 가보고, 다른 곳에도 가지만 쓰레기가 없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남자의 의자를 포장할 수 있는 크기의 박스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남자는 한 손에는 우산을 나머지 한 손에는 의자를 들고 제네바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녀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남자의 의자 배송기는
너무 지친 남자가 박스 찾기를 잠시 포기하고, 자신이 산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운명처럼 해결책과 조우한다.
그때 거짓말 같은 일이 생겼다. 저 멀리 지하상가 통로에서 어떤 사람이 사람 몸만큼 큰 종이 상자를 가득 끌고 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체면과 부끄러움과 영어의 장벽을 모두 잊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략) 나는 다짜고짜 그 상자 나 좀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저 의자 보이지 않느냐고. 저걸 좀 싸야 한다고.
p.232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의자를 포장할 상자를 발견한 남자는 그때의 심정을 <노인과 바다>에서 초대형 물고기를 잡은 노인의 기쁨에 비유한다. 좀 오바스럽지 않나 싶은데, 박스를 찾은 이후에도 남아있는 남자의 시련기를 끝까지 읽다 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바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것은 집을 취향껏 수리하는 과정보다 시트콤 에피소드 같은 남자의 깨알 고생담이었다.
그중 가장 흥미진진했던 에피소드는 남자의 요상한 집주인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계약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지만, 특히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를 집 계약은 쉽게 하면 안 된다.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남자는 그 사실을 간과했고, 곧바로 섣부른 계약으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계약을 마치고 한창 마감을 하던 2017년 2월 14일이었다. 발렌타인데이였지만 나와는 상관없이 그저 마감 기한의 클라이막스였던 그날 문자가 하나 왔다. (중략) 집주인 할머니였다. 건물주에게 메시지가 오는 건 기본적으로 불길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문자의 내용은 더 불길했다. (중략) 이게 무슨말이지? 나는 깜짝 놀랐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군데군데 틀려서 더 무서웠다. 내가 뭔가 이야기를 잘못했나? 아들? 가정환경? 사적인 이야기? 우선 기본적으로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p. 81
한국어지만 독해가 불가능한 문자를 받고 남자는 '공포'를 느낀다.
다른 사람 같으면, 당장 전화를 걸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냐고', '대체 나한테 왜 이런 문자를 보내느냐고' 따져 물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
남자는 화를 내는 대신 사과의 문자를 보낸다.
그래도 나와 같은 집에 사는 건물주이니 잘 지내야 했다. 바로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금방 답이 왔다.
싸우기 싫어서 백번 양보한 끝에 보낸 문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호의 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 집주인 할머니는 "내가 자기 여자 친구는 아니잖아요?"라는 한층 더 혼란스러운 답장을 보낸다.
그럼에도 남자는 집 주인이 시키는 대로 통보한 날짜와시간에 친히 찾아간다.
할머니가 큰 소리를 내며 대문을 닫아버린 날 나는 집 앞 비탈길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별 생각을 다 했다. 부모님께 이야기도 다 했고 계약금도 다 내버렸다. 이런 할머니와 살자니 너무 불안해서 계약을 파기하자니 또 돈이 문제였다. 내 예산으로 갈 수 있는 집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리고 나는 이 집의 장점을 눈으로 봐버렸다. 집이 낡아서 그렇지 입지 조건, 위치, 면적 등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인터넷에 쓰여 있지 않던 이색 불안 요소를 하나 더 확인하게 됐을 뿐이었다. 집주인 할머니.
p.87
이게 겨우 '이색 불안 요소'일 뿐이라니....
집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섬세한 성격의 남자는 모든 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갈등이 일어나면, 화를 내거나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잘못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 성격이다.
그런 성격의 사람이 집주인이라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더 조심스러웠겠는가. 그런데도 그 후에도 할머니는 사사건건 남자를 물고 늘어진다.
목소리마저 우렁찬 집주인 할머니는 문자로 '여자 친구 아님'을 선언한 이후에도 새벽 2시에 자신이 보는 유튜브 링크를 모아 보내고, 새 사진 모음을 전송하는 등, 남자를 기겁하게 한다.
남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선심을 베푼다고, 남자가 없는 사이 장판 공사를 해 버리고,(남자는 자신의 취향이 담긴 바닥을 이미 선결제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냉장고에 음식키트까지 담아서 보낸다. (남자는 자신의 공간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냉장고를 들이지 않은 거였다.) 남자가 냉장고 안에 든 음식을 먹지 않자, 이번에는 성의를 무시한다고 괘씸하게 여긴다.
그야말로 일방 소통을 넘어 불통의 연속.
인내심의 한계에 이를 만한 상황인데도, 남자는 매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집주인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읽으면서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남자의 일관된 저자세가 답답했다.
계속되는 할머니의 횡포(?)에도 매번 저자세로 대응하는 남자.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갑을 관계 때문인가?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이 든 분들과 하는 대화의 묘미는 끊임없이 이야기가 끊긴가는 데에 있다. 이날도 그랬다. 내 메시지는 간단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사는 한 번에 못 들어가겠다. 월세는 낸다. 저 간단한 주제를 전하는 데 15분쯤 걸렸다. 할머니가 중간 계속 끝ㅎ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이었다. 옆집 할머니 이야기도 하시고, 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들고 어디가 문제인지도 이야기하시고, 그러면 안 된다고도 이야기 하시고, 이 동네가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편리해서 좋은 곳인지도 말씀하시느라고 내 간단한 이야기는 도무지 전하기가 쉽지 않아따. 나는 덤불 사이로 손을 뻗어 쪽지를 전달하는 기분으로 할머니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내 뜻을 전하려 애썼다.
p.103
태생이 싸움과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남자의 타고난 성품 같긴 한데, 남자는 주인 할머니와 갈등을 통해 배우고, 변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가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엄마와의 갈등도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남다른 성격의 집주인 할머니와 소통을 어렵게 이어 나가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어르신들까지 이해하게 된다.
이제는 나도 나이 든 분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으면 바로 생각나는 게 있는데, 그 말을 지금 하지 않으면 왠지 잊어버릴 것 같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또 골목길 옆 샛길처럼 다른 화제가 생각나는 것이다. 집주인 할머니와의 대화 패턴도 그런식이었다.
p.104
그야말로 대통합의 유니버스.
나와는 크기부터 다른 남자의 바다와 같은 마음씨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그때 내게는 이야기에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할머니를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내 입장과 상황을 말씀드리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야 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월셋집을 제 취향대로 고쳐나가는 고생기를 깨나 공감하면서 읽었다.
남자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집에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꿈이 아니던가.
혼자 사는 건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집에 들어갈 걸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았고 내 예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열심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p.209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을 때 나 역시 남자와 같이 내 삶이 불만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에 남들보다 한참이나 뒤처진 듯한 조급한 기분, 앞으로도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불안감.
그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나 또한 남자와 같이 다른 데로 눈을 돌릴 것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집 고치는 이야기를 즐겁게읽은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한 남자의 취향을 고수하는 첫 집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양한 취향이 있듯,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런 인생이 꼭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로 읽혔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집주인 할머니처럼 심술 맞은 포인트만 아니라면, 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만으로 초조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