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지리멸렬한 시간을 지나 찬란하게 만난 우리
아기가 잘못될까봐 마음 졸이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이젠 과연 내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세뇌를 해보아도 두렵기는 매한가지. 거기에 더해 그 해엔 이상하게 산부인과 관련 의료사고가 많았다. (맘카페에 자주 들락거려 나에게만 들린 소식일 수도 있지만) 막달에 다 키워둔 아기가 잘못된 사건, 출산 중 산모가 사망한 사건 등등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피켓시위 중인 사건도 있었고, 막달 산모는 이래저래 심란했다.
분만 방식은 애초에 제왕절개로 결정했다. 아이를 출산하는 다양한 분만법을 공부했지만 내 멘탈은 세상 모든 자연스러운 분만방식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약한 엄마를 익히 알았는지 어쨌는지 아이는 내내 역아였고, 8개월 무렵엔 20대때부터 갖고 있던 내막종까지 터져버려 수술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자의적으로도 선택한 참이었지만 의료적인 근거까지 덧붙여져서 한결 마음 편하게 제왕절개가 결정됐다.(아이에게 좋다는 자연분만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채감이 있었나보다. 의사의 판단이 덧붙여지자 마음의 짐이 덜어진 걸 보니 ) 생애 첫 수술. 뭐 이것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에겐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사례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사진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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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제작의 표면적 이유는 '결혼할 때 내가 내 사진을 다 가져와버려서 엄마 아빠한테는 내 사진이 별로 없으니까'였지만, 편집하는 내내 내 마음 한켠에는 만약에 '내가 잘못되면....마지막으로 내가 엄마아빠께 드리는 선물' 같은 애절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전몽각 작가의 <윤미네 집>에서 따와 <지현이네 집>으로 이름 짓고, 우리 가족의 세월이 느껴지는 정다운 책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전몽각 작가 못지 않게 사진 참 많이 찍어주셨는데...라며 편집하며 괜히 울고, 막달에 들어선 산모는 그렇게 심각했다.
달을 채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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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감정기복을 염려했던걸까
아이는 37주에 들어서자마자 태어났다.
마지막 한달 심란하게 보내지말라고 어느 날 새벽 얼렁뚱땅 태어날 조짐을 보였다.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제왕절개가 예정된 산모답게 일사천리로 수술대에 누웠고, 이내 아이가 태어났다. 3.1키로 건강한 남자아이. 산모는 건강하게 회복 중.
비장한 마음으로 사진집을 만들던 산모로선 민망할 정도로 모든 상황이 순조로왔다. 임신 기간에 워낙 고통스러운 이슈들이 많았던 탓인지 수술 후의 고통은 그다지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고, 나는 잘 회복하면 될 일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또한 모든 것이 희망찼다.
그렇게 뜻밖의 날에
우리 가족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