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장래희망은 커리어우먼이었어요.

그럼에도 현모양처

by 삭정이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단 한번도 현모양처를 꿈꾼 적이 없다.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그 시절엔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도 꽤나 있었다. 여자 팔자 뒤웅박팔자라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며 어떤 남자를 만나는가가 그렇게 중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장손 가정의 장녀로 포지션을 잡은 나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시집'과 관련한 덕담(?)을 듣고 자랐다.


가령 나의 앞니가 대문처럼 크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현이는 대문 큰집에 시집 가가 잘 살라는갑다." 같은 말을 보태셨다. 딴에는 덕담이라고.

명절 준비하는 엄마를 돕고 있으면 "우리 현이는 보고 배운 게 많아서 시집 가서도 사랑받을끼다."소리를 한해에 수십번은 들었던 것 같다. 되새겨보니 정말 오마이갓 소리가 절로 나오는 멘트들이다.


10살 전후의 여자아이에게 '결혼'을 덕담으로 던지는 사람들 틈에 사는 동안 단 한명이 다른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은 엄마.

엄마의 멘트는 한결 같았다.

결혼 일찍 하지마라, 공부도 실컷 해라, 연애도 많이 해보고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고 늦게 결혼해라, 장남하고 결혼하지 마라 등등. 당신이 그리 하지 못했던 바를 나를 통해 소망하셨다.


듣고 자란 말이 무섭다고,

나는 결혼은 여자에게 득될 게 없는 일 같이 느껴졌고, 간혹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자마 결혼을 해버린 엄마가 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사춘기에 갓 들어섰던 나는 대학 나오고 사회생활 하는 엄마들이 멋져 보였다. 그분들이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세련돼 보였다. 그리고 그 시절 나에겐 배종옥이 있었다. 드라마 <목욕탕집남자들>에 나오던 맏딸 윤경 같은 똑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저렇게 도도하게 홀로 멋지게 살아가리라 내심 결심했다.


학교에서 조사하는 장래희망에 당당히 현모양처라고 쓰는 친구들을 마음 속으로 살짝 비웃으며 '교수' 따위를 적어냈다.(공부의 끝판왕 같아서 교수라고 썼다) 살림은 내 관심사 밖이었고, 집안일도 그닥 돕지 않았다. 엄마는 나중에 시집가면(늦게 가라 했지 가지말란 소리는 죽어도 안했다) 평생 하고 살아야 되니 엄마 밑에 있는 동안엔 살림 하지 말란 소리를 자주 했다. 내 할 일인 공부 외엔 그야말로 노 관심. IMF로 집이 한껏 어려워진 순간에도 이기적으로 나만 돌봤다. 어른의 영역은 어른들이 해결해야지 그들이 돌봐야할 자녀인 나와 동생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할일 잘하는 게 돕는 거지 뭐겠나...이런 생각을 하는 17살이었다. 물론 사회적인 동물이니 겉으로는 가정의 위기를 공감하고 슬퍼하고 함께 나누는 듯 말했으나, 나의 속은 그저 내 생각만 했다. 이런 K장녀도 있다. 살림밑천 따위는 나에게 부여할 수 없는 역할이었고, 나는 그저 나 혼자 멋지게 잘 살 궁리를 했다. 그게 곧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합리화 하면서.


겉으론 고요했지만 내 속엔 폭풍이 지나갔던 10대 시절을 보내고 밀레니엄에 스무살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고 공부하고 연애하고 갖가지 진보적인 행보에 들락거리기도 하면서 '멋진 나' 만들기에 심취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꿈꾸던 그놈에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도 들어갔다. 의미 없이 가방끈만 길게 늘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박사과정에 들어간 직후였던 것 같다. 석사 때까지 그렇게 재밌었던 공부가 정말 내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박사 과정이 되자 재미 없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워졌다. 투피스 정장 빼입고 강단에 서있는 내모습은 어린 시절 꿈꾸던 멋진 것과 거리가 멀었다. 내가 그토록 멋지게 생각했던 숱한 교수들이 실은 비정규강사였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삶을 수년, 수십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영 자신이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오자 나에게 남은 건 남편과 우리집이었다. 남편의 지지와 집의 안락함 속에서 알게모르게 다쳤던 몸과 마음을 치유했고, 1년 반 후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내가 될지 몰랐는데 아내가 되었고, 엄마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엄마가 되었다. 계획형 인간의 몇 안 되는 P스러운 행보. 어쩌다보니 중대사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겼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나의 역할

아내, 엄마

어? 생각보다 재미있다.

나는 한번도 현모양처를 꿈꾼 적이 없는데, 내적 경멸까지 한 소녀시절을 보냈는데, 나의 장래희망 란에 현모양처라고 한자락 적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는 뭐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는 편이니까 지금 주어진 내 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그럼 뭐다.


당분간 내 꿈은 현모양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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