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어. 지금이 제일 신난단 걸 알았거든"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한참 나를 보다가 이런 내가 좋다고 했다. 그 며칠 전에도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 내가 긍정적이어서 좋다고 했다.
무려 정신이 건강하다고 했다.
연이은 남편의 "고백"에 새삼 나를 들여다 보게 됐었는데,
그 무렵 우연히 법륜 스님 말씀을 듣다 남편이 발견한 "나"의 일면을 파악했다.
법륜 스님 말씀에, 수행이란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 현재 상황을 긍정하는 것.
그러고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이 좋다는 걸 빨리 파악하는 사람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 초등학교때는 그때가 제일 재밌는 줄 알았고, 중학교때도 그때가 제일 좋은 줄 알았다. 고등학교때 역시 그 3년이 제일 좋은 때란 걸 알았다. 그래서 되도록 제대로, 신나게 놀려고 애썼다. 덕분에 지나고 나서 후회가 별로 없다. 대학때도, 대학원때도 마찬가지였다.
숨막힌다며 탈출해버린 그 공간조차도 그곳에 내가 있는 한 나는 그곳을 긍정적으로 누린다.
덕분에 내가 하던 일을 관두고 한순간에 돌아설 때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의 선택을 의아해했다.
누구보다 무탈하게 별 걱정없이 잘 즐긴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수행을 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뜬금 없는 남편의 고백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됐었다. 우선 남편 눈에 비친 나의 마음자리가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투덜지수가 높아졌던 서른 언저리라 나의 장점도 많이 사라졌을 텐데, 남편은 늘 나의 그 점을 읽어 주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근본에 깔린 긍정의 힘을 믿어 주었던 것이다. 남편이 믿어준 나의 마음에 근거하여, 오늘도 불만 없이 마무리 했다는 신혼 일기.
그날의 일기엔
빙판에 넘어져 허리가 불편해지긴 했지만 다행히 뼈는 무사함을 확인했고, 기분 좋은 몇 가지 일들도 있었다. 좋은 이들과 이야기도 나누었고, 신선한 식재료도 사왔다. 오늘 하루 처리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했으며, 따뜻한 방에 앉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수행을 했다.
라고 썼다.
이런 나를 남편이 좋아한단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처음 들은 날이었다. 남편을 만난 지 12년만에. 첫 결혼기념일을 앞둔 어느 날에.
지치고 변질되는 마음 다독이고 바로잡는 곳이라 좋았다는 것, 내가 그에겐 힐링캠프였던 것이다.
진정한 인생2막을 위한 대학원 탈출 결심을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던 건 굳건하게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이 있어서였는데, 남편은 또 남편대로 나를 통해 마음을 다독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