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팀장의 기쁨과 슬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끝난지도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간다.
그동안 오피스 드라마는 여럿 나왔지만 2014년에 나왔던 <미생> 만큼의 임팩트가 있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김 부장 이야기가 보여준 직장 생활에 대한 애환과 하이퍼리얼리즘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50대판 미생이라는 평도 있었고 너무 현실적이라 PTSD를 유발한다는 반응까지 있었다는?
아직 김 부장의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막 팀장이 된 나로서는 관리자로서의 김 부장이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드라마 상으로 누가 봐도 김 부장은 관리자로서는 유능하지 않다. 팀원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른 강요된 회식에, 성과부진을 본인이 아닌 팀원들의 부족함으로 돌리고, 팀원이 만든 PPT에 폰트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한 피드백만 주는 등 많은 이들이 김 부장을 보면서 관리자가 저러면 안되지 하면서 혀를 차면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현실에서 저런 김 부장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본인은 김 부장 같은 사람이 아닐꺼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정작 김 부장 같은, 또는 그보다 더한 무능한 관리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자기 객관화가 되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나도 늘 조심스럽다. 김 부장을 보며 왜 저러지 하고 있는 나도 정작 저런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는 걱정이 종종 든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일들이 팀원들에게는 부담이나 무리가 될 수도 있고, 소통을 잘 하려고 하는 노력이 도리어 라떼짓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부장도 어찌되었든 직장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김 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 공감이 가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김 부장이 진급에서 미끄러져 지방으로 가게 되고, 회사를 나오자 마자 사기를 당해 퇴직금을 날려먹는 이런 모습들이 10년쯤 뒤에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심장이 제법 쫄깃해지고 열심히, 아니 영리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 가장 내 뇌리에 강하게 남은 것은 초반에 김 부장이 백 상무에게 관리자로서 질타를 받는 순간이었다. 팀장으로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늘 고민이고, 대강 감은 오지만 그래도 계속 이게 맞을지 저게 맞을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이 장면을 보고선 조금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실무를 하다가 관리자가 되면 제일 처음 오는 혼돈이 실무에 어디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 지이다. 문서는 어디까지 봐줘야 하며, 고객과의 소통이나 협력사와의 소통에는 또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 지 이런 것들이 정말 혼돈의 연속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어디까지 설명을 해줘야 할지, 설명이 길어지면 시킬 시간에 그냥 내가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늘 된다.
개인적으로는 실무자일 때 문서 스타일에 집착하는 팀장을 만나 고생한 적이 있다. 문서라는 것이 어느정도 올바른 구성과 흐름은 있지만 그 외에는 각자의 스타일이라 특별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팀장은 피드백이 주로 문서의 내용이 아닌 폰트나 글자 크기, 표 색깔 같은 것이었다. 아래 한글을 가지고 '온갖 오묘한 테크닉을 발휘해서' 문서 작성이 아닌 예술? 미술? 을 하는 것 같았다.
백 상무의 김 부장을 향한 일갈은 팀장과 실무자의 차이를 심플하게 정리해줬다. 팀장은 팀원들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해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 나는 저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팀장을 하면서 한 가지의 즐거움은 알게 되었다. 바로 일 잘하는 팀원의 높은 퍼포먼스를 보는 것이다. 나는 내 한계를 알지만 팀원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일잘러 팀원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면 그것만큼 즐거운게 또 없다.
그리고 팀은 에이스 하나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팀이 굴러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궂은 일도 존재한다. 개인의 성향마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 그렇기에 팀원들 하나하나의 역량과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적절한 이격으로 맞물릴 수 있도록 배치하고 조정하는 것이 유능한 팀장이 아닐까 한다.
팀장은 팀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 김 부장 이야기를 통해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게 되었다. 움직임을 크게 크게 가져가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는데, 조금은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팀장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이 장면을 통해 제법 선명한 워딩으로 변환되었다. 김 부장 이야기는 드라마 자체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팀장의 관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드라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