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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18. 2023

스트레스 푸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여행!

모스크바 근교 / 아브람쩨보 여행 (1)

최근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몸이 참 많이 상했다는 게 느껴진다. 겉으로도 표가 나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몇 달째 불편한 것 중 하나가 가슴이 답답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말하기 웃기지만 말 그대로 ‘홧병’ 이었던 것 같다..ㅎ


직장인 고질병이려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서, 바로 풀기가 쉽지 않다 보니 그게 쌓여 작은 통증이 생긴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어 말 그대로 웃프기도 했다..ㅎㅎ




그런데 놀랍고 감사하게도!

오늘 아주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답답한 기분이 없어지는 듯했다. 고작 5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그 짧은 시간으로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다니.


역시 자연 속에서 경치도 즐기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게, 나에겐 변치 않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임을 느끼고 왔다.


적절한 긴장감과 새로운 경험,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쾌청한 공기와 느긋한 분위기.


내가 지내고 있는 모스크바에서 딱 1시간을 갔더니 그 모든 걸 찾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도시, 아브람쩨보


아브람쩨보는 예술가의 마을로 유명하다.


취미부자인 내가 새로 빠진 취미. 바로 러시아 미술이다. 미술을 깔짝깔짝 대다 보니 어느덧 유명한 화가는 귀에 이름이 조금은 익었는데, 그 화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리곤 했다곤 한다.


러시아 미술 거장 일리야 레핀, 복숭아를 든 소녀로 유명한 발렌틴 세로프, 미하일 브루벨 등 유명한 화가가 여기 있었다고 한다.


복숭아를 든 소녀 -발렌틴 세로프 그림- (다음 포스팅에도 등장합니다. 후훗)


비단 그림뿐 아니라, 유명한 가수 표도르 샬라핀을 포함해 다양한 예술가들도 이곳에 와서 예술을 했다 한다. 이들은 ‘아브람쩨보 서클’ 로 불리었는데 구성원 조합이 장난이 아니다.


아브람쩨보. 찾아보니 모스크바에서도 가깝길래 올해 가을 여행은 여기로 가야겠다 다짐했다. 그리하여 몇주를 벼르다 오늘! 드디어 여유가 됐는데, 또 막상 일요일이 되니 “아 내일 월요일인데 그냥 집에서 쉴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여행은. 갈까 말까 하면 가야 한다.





모스크바에서 아브람쩨보 가기.
여행하며 마주친 새로운 것들
여행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들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길게 가는 기차가 아니라, 교외로 가는 비교적 짧은 구간 기차들은 “Электричка (일렉뜨리치까)” 라고 부른다.


러시아 대중교통(버스, 지하철 등)은 제법 편리한 편인데, 이 일렉뜨리치까 타는 건 좀 난이도가 있어서 타러 갈 때마다 조금 긴장한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출발 역이 “야로슬라블 역”인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레닌스키 역” 티켓 판매처에 가서 “아브람쩨보 가는 티켓 주세요~” 했다가 다소 면박을 얻어먹었다.


 “그런 역 가는 기차 없거덩~ 옆 역으로 가보던지!~”


러시아 사람들 대체로 (의외로) 오지랖 넓고 친절한데, 기차역 직원들은 유독 차갑다.


하지만 바로 옆 역 창구에 가니, 낯선 아주머니가 도와주셔서 무난하게 기차를 샀고, 플랫폼도 잘 찾아갔다. 기차역에서 이 정도 헤매고 탄 거면 오늘은 제법 선방한 거다 싶었다.



그리고 몇 번 헤매다 보니, 이젠 왠지 감도 와서 다음부턴 정말 1도 안 헤맬 거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이 기차역만 오면, 러시아에 온 지 2년이 됐는데 여전히 익숙해질 게 투성인 듯하다가도, 이렇게 뭔가 조금씩 눈에 익어갈 때는 또 정착하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그리도 오늘은 어쩌다 새롭게 일렉뜨리치카 어플도 발견했다. 앞으로 이걸 쓰면 앞으로 일렉뜨리치카 타는 건 식은 죽 먹기겠다 싶었다. 낯선 환경을 이겨먹은 기분이 들었다.


Yandex Trains 어플


항상 기차를 타러 가면 내가 가려고 하는 역이 전광판에 안 쓰여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기차역 그 어디에도 없어서 결국 플랫폼을 못 찾아 여행 출발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전광판에 최종 종착역만 쓰여 있으면.. 외국인이 그것만 보고 그 기차가 거쳐가는 모든 역을 알 리가 있냐고!


하지만! 오늘 한 새로운 발견과 함께라면 이제 두렵지 않다. 어플(Y.Trains)에 출발지와 내가 가고자 하는 도착지를 치면 “ㅇㅇ행” 기차라고 시간표 리스트에 뜬다. 그러면 전광판에서도 해당되는 출발시간과 “ㅇㅇ행”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 있었으면 깨치지 못 했을 배움이다. 이 새로운 발견과 적응의 기쁨, 여행을 통해 느낀다.


1시간 20분을 달려 아브람쩨보 도착!


아브람쩨보 역 다음 역인 호찌코보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아브람쩨보 저택” 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누군가 블로그에서 “아브람쩨보” 역에 내려 숲 속을 걸어 거기까지 갔다는 걸 보고 나도 그래봐야겠다 싶었다.


분명 블로그엔 기차역에서 저택으로 가는 길 곳곳에 표지판들이 있었다 했는데, 내리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찰나, 사람들이 우르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대세를 따라 일단 가보자 싶었다.



무리가 대충 네비 상 내 위치가 저택을 향해 가고 있길래 그냥 저 사람들 믿고 계속 따라가 보자! 하고 걸었다. 전혀 모르는 한 가족의 뒷 꽁무니를 졸졸 쫓아가는데, 혼자 숲길을 걸었다면 “나 숲 속에서 길 잃는 거 아냐?” 싶었을 텐데, 괜히 낯선 이들에 의지되었다.



헤드셋을 빼고 새소리를 듣기도 하고,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맞으며 걸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나무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다.



그렇게 기차에서 내린 각각의 일행들은 다 같이 약 30분을 걸어서, 같은 목적지인 “아브람쩨보 대저택”에 도착했다.


자연 속에서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서는 이 길 하나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아브람쩨보 대저택 근처 연못



- 대저택 소개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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