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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03. 2023

고대 도시의 향기가 가을과 더해져 더욱 깊어갈 때

모스크바 근교 / 블라디미르 | 가을이 만연해 혼자 걸었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블라디미르 여행 코스!


여행에 앞서 매우 간단히 블라디미르에 대해서 살펴보자


블라디미르-수즈달은 1157년부터 1331년에 존재했던 공국으로, 모스크바 대공국의 전신이다. 그 공국의 수도가 로스토프에서 수즈달로, 수즈달에서 블라디미르가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게 멸망해 모스크바 대공국이 세워졌다니, 지금의 모스크바 명맥이 시작된 근원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확실히 이렇게 황금고리 도시들은 고대에 세워진 곳으로, 역사가 풍부한 곳들이다. 러시아에서 역사가 풍부한 곳은 확실히 종교적인 건물들이 많다. 블라디미르도 이런저런 교회 건물들이 매우 많이 보였다.


모스크바 대통령 집무 공간인 크렘린의 성벽도, 지금은 붉은색 벽돌이 굉장히 상징적이라 원래부터 붉은색이었을 듯한데, 옛날에는 흰색 벽이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에서 본 성벽도 다 흰색이었다. 고대에는 성벽을 다 흰색으로 지었나?





Bogoroditse-Rozhdestvenskiy Monastyr'

첫 코스였던 곳이자,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게 된 수도원. 지금은 블라디미르가 내 눈엔 작은 도시 같아 보여도, 한때 명성을 날렸던 곳답게, 교회 규모도 컸고 아름다웠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들어가니 가을이 한창이었다. 이날 비도 왔던지라 상쾌한 가을냄새가 코끝을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알록달록 물든 가을 낙엽잎이 도시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가방 하나 턱 메고 떠난 여행인 만큼 사전 조사가 부족했던지라 수도원 앞에 써져 있던 설명들이라도 부랴부랴 읽어보았다.


이곳은 1191년 великий князь всеволод большое гнездо라는 드미트리 대공에 의해 지어진 수도원으로, 800년이 넘은 이곳은 유명한 고대 교회 중 하나라고 한다. 1237년 몽골이 러시아를 지배하려 들어온 시절 몽골에 의해 완전히 망가졌다가 다시 복구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라는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있다. 이 분이 1220년 블라디미르 대공국에서 태어나, 러시아를 전투에서 지켜냈으며 러시아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받아들였다.


후에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왕 중 하나인 '표트르 대제'가 그가 새로 천도한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유해를 모셔 가기 전까지, 알렉산드르 넵스키 유해가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이곳은 소련 시대에 다시 파괴되었다가 1994년 다시 복구되었다 한다.  



나와서 다시 걷다 보니 그 국민적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동상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면 이런 뷰가 펼쳐진다. 블라디미르 도시를 내려다보며, 한적하게 걷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우리나라는 산들이 많다 보니 어딜 가도 산이 보이는데, 여기서 너른 땅과 펼쳐진 하늘을 보고 있자니 탁- 트인 기분이 들었다.


끝없는 지평선이 마음을 이리 평안히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 사진에는 너른 풍경이 안 담기다 보니 감동이 전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살면서 기억에 남을만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정도로, 마음이 웅장하면서도 평안한 기분이었다.


마음이 탁 트이는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 경치가 아름다워서일까,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도 보았다.


길을 따라 걷다 걷다 보면, 유명한 건물들을 마주치게 된다.

 


가까이 보이는 것부터 '드미트리옙스키 사보르', 네모 건물이 '박물관(Vladimir Suzdal Museum Reserve)' 그 뒤가 '성모 안식 대성당'이다.



드미트리옙스키 사보르 (Дмитриевский собор)


아까 그 수도원을 지었던 대공이 이 건물도 지었다고 한다. 아까 그 수도원은 1191년에 지었다 돼있었는데, 여기는 1193년에 지었다고 한다. 2년 터울로 지었구나(?) 그 왕이 힘이 세긴 셌나 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연달아 짓다니.



이 성당은 블라디미르와 수즈달만의 유니크한 하얀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다고 한다. 얼마나 의미가 깊은 건물이면 그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이럴 때는 나도 가이드 끼워서 설명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음 지식이 한층 더 풍부해지겠다 싶긴 했다. 아무래도 지역 현지 가이드의 설명은 클래스가 다를 테니. ㅎㅎ


오른쪽 사진에서 보다시피, 정말 아름답게 조각해 뒀다. 보고 있자니 '아니 12세기에 돌을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깎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외벽 조각은 중세문학을 주제로 한 거라고 하는데, 아직 어떤 내용인지 전부 밝혀지진 않았다고 한다.



성모 안식 대성당 (Свято-Успенский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블라디미르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성모 안식 대성당. 1157년 안드레이 보고류프스키 대공이 수도를 수즈달에서 블라디미르로 옮겨올 때 만들었다. 양파 모양 둥근 지붕 '쿠폴'의 금빛이 매우 아름답다. 이 성당을 모티브로 해서 15세기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있는 성모승천대성당(우스펜스키 성당)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부는 사진금지라고 돼있어서 못 찍었는데, 이콘(성상화)과 예배당이 매우 장엄하고 화려했다. 꼭 들어가 보는 걸 추천한다. 오래된 벽화들도 보관되어 있으며 이 역시 유네스코에 등재돼있다고 한다.



성당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닐다 보면 블라디미르대공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요즘 역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현장에서 책에서 보던 분들을 마주하니 반가운 기분이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969년 즉위해, 989년 동방정교회를 키예프 루스의 국교로 선언하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행하신 분이다. 이 공적으로 동방 정교회의 성인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동방정교회를 믿고 있으니 이분이 역사상 차지하는 의미는 실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을이 만연하다.
도시가 850년 생일을 맞이했을 때 다리에 이렇게 만들어 붙였나보다.


골든 게이트 Golden gate / Зоротые ворота


그냥 대로를 따라 걷다 보니 나온 마지막 코스. 골든 게이트! 저녁에 보니 금색 이콘, 금색 조명과 흰색 성벽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중세 시대 요새가 있었는데, 지금은 요새는 사라지고 이 관문, golden gate가 남았으며, 내부에는 과거 몽골의 침략을 다룬 박물관이 있다.




숙소 소개


블라디미르 여행을 다소 즉흥적으로 오게 돼 숙소도 에어비앤비에서 다급히 구했다. 위치상 시내와 가까워 보였고, 내부도 깔끔해 보여서 바로 예약을 했다. 1박에 약 4,000 루블 (약 6만 원) 정도였는데, 다 좋았지만 입구가 골목길이어서 저녁에 여자 혼자 가기엔 무서웠다.


당시 에어비앤비는 링크가 이러했는데, 지금은 에어비앤비도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어서 사용이 불가할 것 같다. 우선 주소라도 남겨본다.


https://abnb.me/qnUh4Iwyokb  ул. Ново-гончарная д. 24, кВ 26, подъезд 3, этаж 3.


혼자 묵기 너무 쾌적하니 좋았고, 침대도 편안했다. 집주인도 너무 친절했다. 못 찾겠다고 전화로 찡찡대니(?) 너 찾을 때까지 수화기 들고 있어 줄게~~ 이거 보여 저거 보여? 하며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집주인.. 이리나 씨.. 감사해요!



혼자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혼 맥!


숙소에 짐을 두고 택시를 타고 맥주를 한잔 하러 나왔다. 택시비가 100 루블(1500원)도 안 나와서 매우 당황했다. 시골은 이건 좋네.


혼자 여행에서 내가 의식처럼 거행하는 코스는, 바로 저녁 혼맥 (a.k.a 혼자 맥주). 블라디미르가 너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 맥주 집을 비롯해 갔던 식당들이 다 좋아서다.


Blackwood

https://goo.gl/maps/bMh4Xhx1Aaff2iiE7


저런 사슴? 머리 달아놓은 걸 보고 인테리어 신경 쓰는 집인가 보다 생각했다. 내 개똥철학 중 하나는 "감성 있는 인테리어에 맛이 깃든다."인데 틀린 적이 거의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맛집 잘 찾기로 소문난 내가 맛집을 고를 때, 무조건 감성 인테리어도 꼭 함께 살핀다. 이유는 사장님이 인테리어에 정성을 기울였고 그 센스가 묻어나면, 음식에도 필히 그만한 정성을 쏟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멋진 인테리어에,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동양 여자애 혼자 와서 밥 먹는 것도 신기해하는 눈치였지만, 아랑곳 않고 샤슬릭을 시켜서 꼬챙이 하나를 산적같이 우적우적 먹으니 더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뭐 어때요?



수제 맥주 인디언 페일에일과, 드라이 아일랜드 스타우트를 먹어보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러시아 사람들도 진짜 맥주 잘 만든다.


혼자 야무지게 먹고 숙소에 와서 일기를 쓰며 블라디미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브런치를 먹고, 수즈달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다시 블라디미르로 돌아와 모스크바로 가는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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