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냐 Oct 03. 2023

예술이 흐르다 못해, 철철 넘쳐버린 그곳

모스크바 근교 / 아브람쩨보 여행(4)

부자가 예술을 사랑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brunch.co.kr)


이전 포스팅에서 마저 둘러보지 못한 아브람쩨보의 대저택 이모저모를 마저 구경해보려 한다!


바냐 쩨레목 Terem Bathhouse

각종 도자기와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던 마스터 스튜디오에서 나와 다음으로 간 곳, '바냐-쩨레목'이라는 공간이다. '바냐'는 러시아의 목욕탕을 의미하고, '쩨레목'은 대저택의 살림방을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바냐'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나 이후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됐으며, 지금은 Yelena Polenova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적인 가구들, 주방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목조 건물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다. 1800년도에 지어진 집이라 하는데, 세심한 조각들,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내부로 들어갔을 때 더욱 놀랐다. 이 감성.. 지금 이 시대에 친구 집에 갔는데 이런 스타일로 꾸며놨다 하면, "야 너 진짜 디자인 감각 대박이다.."라고 하며 놀랄 것만 같았다. 무늬는 화려한 듯한데 소박한 것 같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였다.


곳곳의 사모바르(러시아 전통 주전자)와 대칭적인 디자인들, 이 공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저 러시아 스러워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브람쩨보, 20세기 예술 전시"

밖으로 나오니, 앞서 봤던 전통 러시아식 건물들과 달리 웬 유럽스타일의 2층짜리 멋진 건물이 보였다. 요 건물 앞에 테이블에선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카페가 있다면 살짝 쉬어가볼까? 하고 나도 들어가 봤다.



정말 1층에 카페가 있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본 세련되고 멋진 전시회장 아우라에, '와 여기 재밌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호다닥 발길을 돌려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시간을 잘 맞춰 오면 큐레이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미술을 잘 아는 분이 설명을 해주신 건진 모르겠는데, 배가 뽈록-하게 튀어나오신 아저씨 한분이 러시아 아주머니들 무리를 이끌고 그림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고 계셨다. 나도 얼른 따라가서 들으려 했지만 설명이 때마침 끝나서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둘러본 그림들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둘러보는 아주머니들
내게 유독 인상적이었던 두 그림


인상적인 그림을 두 점 만나볼 수 있었다.

마치 기념품을 사는 심리처럼, 러시아에 있으니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왼쪽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러시아의 나무인 하-얀 자작나무가 크게 그려져 있고, 두건을 둘러쓴 러시아 여성, 그리고 목재 나무집이 러시아임을 말해주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왠지 모르겠지만 보고 있자니 한국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은 쨍한 파란색에, 붉은 소나무, 청록색의 나뭇잎들 때문일까? 조선의 '일월오봉도'가 떠올랐다.


일월오봉도


하지만 그 배경을 뒤로하고 앉아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손가락도 다쳤고, 지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어떤 사연으로 그려진 그림일까 궁금해졌다.




폴레노프의 다차 Polenov's Dacha


전시회장을 나와 들어간 다음 장소. 폴레노프의 다차.

아까 본 바냐-쩨레목 건물 안에 있던 주방용품들도 '폴레노바'의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분이 살던 곳일까? 하며 들어가 보았다. 맞았다!


이곳은 1882년 현지 로컬 목수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젊은 부부인 Vasily Polenov와 Natalia Polenova를 위해 지어진 곳이라 한다.  이곳은 작업실이자 작은 전시 공간으로도 사용됐고, 1915년엔 병원으로 사용되고 했다 한다. 지금은 "두 나탈리아"라는 특별전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위 Natalia도 화가였지만 딸도 이름이 Natalia로,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인지 딸도 화가가 됐다. 그리하여 두 명의 Natalia가 창작해 낸 작품들을 이 공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딸 Natalia의 수채화들도 참 마음에 들었다. 왼쪽처럼 귀엽고 촉촉한 수채화도 그렸고, 오른쪽 그림처럼 전형적인 러시아 생활을 담아내기도 했다.


딸과 엄마 Nataila 모두 러시아 스러운 것을 많이 담아냈다는 게 전시에서 느껴졌다. 아래 사진처럼 전통 민화들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만 한 게 다가 아니라, 그들의 '우리' 것을 그려보려 한 작가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왼쪽) 죽은 공주와 일곱 기사들 (푸슈킨 동화, 딸 나탈리아 그림) / (오른쪽) 바보 이바뉴슈카 (엄마 나탈리아 그림)  




구세주 성당 Church of the Savior

오늘의 마지막 코스! 구세주 성당.

아니, 집 안에 교회가 있는 게.. 말이 되나? 정말 이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됐겠다 싶었다. 러시아 귀족 클라스란 이런 것일까?



Viktor Vasnetsov가 설계하고, 바실리 폴로네프, 일리야 레핀, 엘레나 폴레노바, 미하일 브루벨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 낸 이 성당.


원래 종교 건물들은 참 예술적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작은 도시의, 그 작은 도시 안의 한 집의, 작은 성당인데! 이렇게 국가적으로 유명한 많은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성당이라 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들어가니, 러시아 미술 역사 시간에 배웠던 'Iconostasis'가 떡하니 펼쳐졌다.


성당 내 iconostasis


성당을 지키고 계시던 아르바이트 아주머니가 그림 설명이 적혀있는 코팅지를 건네주었다. 어떤 그림을 누가 그린 것인지 표시되어 있었다.


Icon 은 성상화를 의미한다.

러시아 교회에 가면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곳에 Icon들이 그려진 벽? (그냥 요 위 사진처럼 생긴 것) 이 다 있다. Iconostasis라고 한다.


가운데 문에는 '복음' 그림, 그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구세주'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배웠다. 이곳에서 그걸 직접 보고 '와, 배운 만큼 보이는 거구나?' 싶어 열공한 나 자신이 살짝 기특해졌다.


가운데 : 유명한 러시아의 화가, 일리야 레핀이 직접 그렸다는 예수님 그림


무엇보다,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인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에서 많이 본, 러시아의 국민 화가 '일리야 레핀'이 이 예수님 그림을 그렸다고 코팅지에 써져 있어서 뜨악했다.


그냥 가방 하나 덜렁 메고 근교 여행 온 건데, 참 귀한 걸 많이 보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옆쪽 모습이다. 이곳에는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마몬토브 부부가 묻혀있다.




집으로!


이렇게 아브람쩨보 대저택을 둘러보고, 아브람쩨보 대저택 안에 있던 벤치에 앉아 잠시 가을 공기를 맡았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이제는 가야겠다 싶어 5시가 될 무렵, 모스크바로 다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가을이 완연하다.

 


모스크바에서 여기로 올 때는 기차역 '아브람쩨보'에서 내렸는데, 거기서는 숲길을 따라 1.5km 정도 제법 걸었었다.


집에 갈 때는 저택 바로 앞에 버스가 오길래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버스는 모스크바에서 가는 방향 기준 '아브람쩨보' 다음 역인, '호찌코보' 역으로 간다.



버스를 타고 아브람쩨보 도시 시내는 이렇게 생겼구나, 구경하며 가는 맛이 있었다.


참 아파트가 몇 개 없고 시내라고 해봐야 슈퍼마켓 정도 있는 작은 마을? 같은 도시였다. 와중에 '오징어 게임' 티셔츠를 입은 로컬 소년이 지나갔다. 이 작은 도시에까지 한류가 뻗쳐들어왔다니, 새삼 놀라웠다. 러시아 문화에 젖어있다가 한국 문화의 위력에 감탄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브런치에 공유하겠단 일념 하에 티셔츠 부분만 호다닥..


 



모스크바 기차역에도 '아브람쩨보' 파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모스크바에 2시간여 만에 도착!

아브람쩨보 미술 탐구는, 아브람쩨보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모스크바 기차역에 와서, 야로슬라블역에 걸려있다는 '콘스탄틴 코로빈'의 그림들을 보았다. 오리지널 원본은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에 있지만, 러시아 철도청에서 복제품을 구해와 기차역에 전시하였다.


코로빈 <러시아의 북쪽을 주제로한 패널> : 야로슬라블역 실내 장식


비록 원본은 아니더라도 '아브람쩨보' 서클 중 한 작가의 그림을 도착해서까지 맛볼 수 있음에, 촉촉해진 감성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야로슬라블 기차역에서 나오며 찍은 아름다운 모스크바의 해 질 녘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부자가 예술을 사랑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