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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Jun 07. 2023

여유도 일부러 만들어내야 하는 것!

모스크바 근교 / 콜롬나 여행 (3)



콜롬나 여행 2일 차 아침, 눈을 떠 창문을 여니 비 온 뒤 나는 특유의 촉촉해진 아침 냄새가 느껴졌다. 평소땐 출근하기 바빠 아침에 창문 열 겨를이 없지만 난 여행자니까! 이날은 여유롭게 창문을 걷혀보며 여행을 실감했다. 낯선 곳에서 눈을 떠 찹찹한 아침공기를 쐬니 기분도 청명해졌다.



사실 눈을 떠서는, 어제 어느 정도 관광은 다 한 것 같아서 기차 시간이 4 시긴 하지만, 취소하고서 체크아웃하고 바로 모스크바 집으로 복귀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마을이고,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많이 여행하는 장소인만큼 정말 하루면 충분했던 코스였다.




억지로 여유 가지기


하지만 어제 이 콜롬나를 걸었던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던 걸 떠올리며, 적적해도 조금만 더 거닐다 가자, 하는 생각이 들어 원래 계획대로 느지막이 가기로 결심했다. 내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마음이 바빠질 것 같아서, 내 일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억지로 여유를 조금 더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가볼 만한 곳은 어제 다 가보았지만,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곳을 둘러볼까? 하고 어제 갔던 길을 그대로 가기로 다짐했다.





Dushistiya Radosti


그렇게 걷다 가장 먼저 들른 곳. 번역하면 향기로운 기쁨. 향수와 비누를 파는 곳이라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거겠지만, 시적이면서도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가게명이다.


박물관 투어도 가능하지만, 나는 그냥 안에서 비누와 향수 구경만 하고, 기념이 될만한 걸 샀다. 첫째 날 들렀던 장소지만, 사람이 많아서 자세히 못 본 것 같아 찬찬히 둘러보고 나왔다.


(왼쪽) 두쉬스찌야 라다스찌 옆에 있는 카페 앞 포토샷에서 찰칵.

 

아기자기한 두쉬나야 라다스찌 내부



Kalachnaya
칼라츠나야. 깔쪼(반지) 에서 따온 빵 이름이라 한다. 반지 모양이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코너를 돌면 있는 "칼라츠나야"도 유명한 관광 스팟 중 하나이다. 반지 모양을 한 빵이 유명한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박물관이 있긴 하다.


어제 여기도 길이 엄청 길었는데, 사람들이 줄지어서 빵 하나 사려고 기다리자니, 우산도 없이 오래 서있을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포기했었다. 아침에 가니 사람이 없어서 클래식으로 보이는 '칼라츠나야 콜로멘스카야 (콜롬나 칼라츠나야 빵)' 하나를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생긴 건 퍼석퍼석하니 맛없어 보였는데, 생각보다 촉촉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명물인 만큼 못 먹어보고 왔음 아쉬울뻔했는데, 아침에 이렇게 굳이 시간 내어 온덕에 빠르게 사 먹어보고 올 수 있었구나 싶어서, 조금 더 남길 잘했다 싶었다.



바로 옆 성문 같은 게 있는데, 전날 들어가 보지 않아서 괜히 들어가 봤다. 이 성탑에도 어떤 스토리가 있을 텐데, 하는 순간 옆에 가이드 투어 무리가 지나가기에 쓱 껴보고 싶었는데.. 잘 참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문한 곳!


파스찔리 팩토리


정말 좁은 동네여서, 산책을 더 한다 해도 결국 들를 곳이 거기서 거기였다. 다 어제 간 곳들이긴 해도, 한번 더 가보는 곳이니 오히려 더더욱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후다닥 관광했던 어제는 못 느꼈던 매력을 두 번째 날엔 편안한 마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역시 전날은 헐레벌레 파스찔라가 유명하다 해서 후다닥 사서 나왔다면, 이날은 여유롭게 카페에 들어가서 19세기 옷을 입은 카페 언니한테 차를 주문해 보고, 피아노 연주도 가만히 들어보았다.


바깥 벤치에 앉아서 차와 디저트를 혼자 먹고 있으니, 러시아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저기 아가씨 좀 봐, 티 예쁘게 잘 차려서 먹고 있지?" 하며 나를 보기에,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는데 그 따뜻한 순간들이 참 기억에 남는다.


여름이 되면 바깥 테라스도 예쁘게 꾸며놓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니,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


그렇게 따뜻한 차를 한잔 하고, 따스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섰다.


Ruliki Vverk 룰리끼 베르흐


정말 나 빨리 복귀했으면 어쩔 뻔했냐 싶었던 또 하나의 장소. 콜롬나의 마지막 코스. 룰리끼 베르흐 펍. 전날 지나가면서 봤을 때도 사람이 참 많아서 "혹시.. 여기가 진정한 로컬 맛집?" 하며 “나 엄한 데서 밥 먹고 나온 것인가.." 생각을 하며 아쉬워했는데, 조금 더 오래 체류한 탓에 나도 맛보고 복귀할 수 있었다!



병맥주도 맛있지만, 나는 맥주집에 가면 생맥주를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생맥주를 시켜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맥주도 딱 3가지를 팔고 있었다. 라거, 밀맥주, 흑맥주. 모두 맛보고 싶었지만 고주망태가 된 채 기차 타고 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 평소 제일 좋아하는 밀맥주 한잔 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식은 슈니첼을 시켰는데, (사실 내 안의 바보가 튀어나와서 슈바인학센을 시키려던 게 슈니첼을 시켜버려서 먹게 된 거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아 내가 슈니첼이라고 뱉어버렸구나, 생각하고 먹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들 먹던 슈바인학센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한국 족발이 떠오르는 야들야들한 그 고기.. 거기에 맥주를 곁들였다면 마지막 만찬으로 완벽했을 텐데 싶었다.


하지만! 다음에 한번 더 와서 먹으라는 의미로 ‘일말의 아쉬움을 남겨둔다’ 생각하고 그렇게 콜롬나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행 마무리


봄, 여름도 좋을듯했지만, 길거리마다 가로수들이 많아 왜 콜롬나가 가을이 유명한지 알 것도 같았다. 이 나무들이 다 알록달록 물들면 코로나의 19세기 감성과 참 잘 어우러지겠다 싶었다. 슈바인학센도 못 먹었으니(?) 가을에 다시 한번 오도록 해야겠다.


이것으로 콜롬나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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