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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Mar 14. 2024

외국에 살면 예민해지는걸까?

별거 아닌 일에도 예민해지는 건에 대하여

집에 전등이 몇개가 나갔는데 아직 살만해서 두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화장실 전구가 다 나갈 기세길래 결국 전기 기술자를 불렀다.


아저씨는 장장 3시간동안 전기가 흐르는 경로, 전구의 특성 등을 설명하며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이 전구가 어디서 연결됐는지 모르겠네” 하며 전기 컨트롤 패널에 연결된 선들을 하나하나 테스트 해보자는 것이었다.

긴 시간동안 서서 러시아어를 듣고 있자니 피로가 몰려왔다. 아저씨는 7시에 왔는데, 시계가 밤 10시 반을 향해가자 아저씨 이러다 12시나 되어야 가려나 싶었다.


순간 “아 갔으면 좋겠는데! 이 아저씨 뭐 잘 몰라서 이러는거 아냐?”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열정으로 똘똘 뭉쳐 온갖 전구를 다 갈아보겠단 눈빛을 쏘던 아저씨에게,  “저 다 수리할 필요 없으니 전구 한두개만 갈면 돼요. 딴덴 그냥 하지마세요“ 라고 해버렸다.


아저씨가 가고 난 뒤 혼자 드러누워 생각해보니, 열심히 한번 해보려던 사람에게 너무 예민했구나 싶어 다소 미안해졌다.


왜 이렇게 예민해진걸까?


한국에 있을 땐 성격 둥글둥글하고 모두에게도 다 맞춰줄 수 있을거같은 사람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발화점이 너무 낮아져 쉽게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이게 내 성격으로 굳어진 건 아닐까, 흠칫 하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하다보니 “외국에 살다보니, 경계하며 살고 자기를 방어하려하다보니 신경이 곤두서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경계하고 자기 방어를 할 일이 참 많았다.


내 언어도 아닌 말을 쉼없이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와서 열심히 작업하고 간 게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닌데, 나의 이 예민함은 어디서부터 왔나 생각해보았다.


한 2년 전, 집 근처에서 길 지나가던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나 ‘러시아에선 이런 일 당해도 경찰이 아무것도 안해준다’ 하여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한 기억도 떠올랐고.. 혼자 탄 택시에서 껄렁대는 아저씨가 외국에서 왔냐, 남자친구 있냐 등을 묻는 건 흔한데도 늘 기분이 찝찝했던 것.. 그런 것들이 모두 머리에 떠올랐다. 치안이 많이 좋아진 러시아지만, 이런 일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외간 남자가, 그것도 모르는 외국인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와서 2-3시간을 있으며 갈 생각을 안하니, 이런 저런 두려움이 들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었다.


더욱이, 회사에서도 살아남으려 아등바등이지만, 집에 오면 따뜻한 밥 해주는 가족도 없고 소주 한잔 기울일 편한 친구들도 없다보니 스트레스를 풀데도 없었고, 날 지켜주는 이가 없다 생각하니 또 예민해지기 마련이었겠다.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워 버릇하는 습관들이 쌓여버렸겠지.


아무리 해외생활이 잘 맞는 나지만, 해외생활은 이처럼 녹록치가 않다. 말이 잘 통하는 우리 나라와 달리 항상 어깨 펴고 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발 디딘 이곳에, 또 적응하며 살아가야겠지..?


비단 우리나라에 있다고 해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괜히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두려움이 배가 되기도 하고 도움을 청할 데가 없어 더더욱 스스로 날 세우는 때가 있겠지만.. 또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


그리고 또 그러한 것들을 커버할만큼 신나고 도전적인 일들도 동시에 일어나는 게 외국 생활이기도 하니..


다만, 방어할 땐 방어하되, 즐길 것들은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이 예민함이 내 성격으로 굳어지지 않게 노력해야겠지, 하고 새삼 다짐해본 저녁이다.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채 또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해외생활을 해 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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