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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04. 2023

직장인의 일요일, 오롯이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좋아하는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금같은 시간

오늘은 일요일. 직장인에게 주말이란 아주 금 같은 시간이다. 7일 중 5일이나 되는 시간을, 회사라는 곳에 갇혀 내가 하고 싶건 하고 싶지 않건 나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하고, 회사라는 제도 안에서 움직여야만 한다.


하지만 주말은 5일 중 2번밖에 없는데, 오롯이 나의 의지로 채워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짧은 시간이겠는가? 러시아인들도 끔찍이 주말과 휴일만을 기다리는데, 이런 걸 보면 전 세계 직장인들은 다 똑같나 보다 싶기도 하다.




정말 짧지만 달콤했던 오늘, 일요일.

그야말로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하루였다. 그 어떤 부정적인 기분이 들지 않았던 무해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눈을 떴는데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미적댈 수 있다는 그 여유로운 기분이 너무 좋다.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에 조금 더 비비적대며 나만의 하루를 시작한다.


계란을 턱 올린 김치볶음밥

배가 고파지면 몸을 일으킨다. 평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일요일에는 느긋이 밥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슥슥 요리하기 만만한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러시아 그림 역사 수업을 들으려고 노트북을 켰다.


Profi라는 튜터 찾는 러시아 어플로 러시아 그림 역사 선생님을 찾았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게도 선생님은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가 계신 상태였다. 매 수업을 열정적으로 준비해 오시는 나의 미술 선생님은, 내가 러시아 예술에 빠졌듯 한국 예술 문화에 빠지기 시작하신 상태였다. 어쩜 이리도 운명같은 선생님을 만났을까? 운명같은 선생님과 좋아하는 과목 수업, 완벽한 일요일 아침의 루틴이다.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라는 화가의 작품들.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너무 끌렸다.


오늘은 내가 왠지 모르게 계속 끌렸던 그림을 그린 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에 대해 알고 싶다 하니 오직 그 작가에 대한 수업을 별도로 준비해 주셨다. 왠지 모르게 끌리고 좋았던 것에 대해 풍부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스카이프로 한국에 계신, 러시아 그림 역사 선생님께 그림을 배우고 택시를 타고 20분 가면, 실제 그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에 갈 수 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과의 1회차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는데, 모임 장소가 그 미술관 근처에 있어서 모임 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서모임을 하기에도 알맞은 날이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제는 가을이 기다려지는 여름의 막바지 무렵이구나 싶었다.


독서모임의 첫 책은 ‘명화로 읽는 로마노프 왕조’로, 그림에 빠지기 시작한 내가 읽자고 제안한 책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나에겐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는데, 모임에 온 다른 언니는 그리 즐기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같은 것을 읽고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나 사람마다 관점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밌기도 했다. 이런 게 또 독서모임의 묘미겠구나 싶었다.


또 다른 언니는 3번을 읽었다 하고, 또 다른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소소한 작은 부분이 좋았다고 말해주어 공감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독서모임을 했던 복합문화공간 GES-2. 이렇게 편안히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스카이프로 배운 그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보러 가려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트레찌야콥스키 미술관 구관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독서모임 언니와의 수다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나 언니 저기까지만, 좀만 더 데려다줄게!” 하면서 가다 보니 내 목적지와는 한참 멀어져, 언니가 가려고 했던 장소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재밌는 건, 그 언니도 언니 목적지에 못 갔다. 둘이 어쩌다 보니 미술관 앞에 길거리 화가들이 그림을 판매하는 곳을 둘러보다가 거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러시아는 문화예술의 고장답게, 도처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다. ‘길거리 화가’라고 하는 화가들의 실력도 매우 수준급이다.


붉은 광장과 바실리 성당을 그린 그림


요즘 난 그림이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평일들이 너무 건조하고 퍽퍽해서일까,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본다거나 하는 창조적인 생활에 빠지게 된 것 같다. 메마른 나의 일상을 촉촉이 만들어주는 그 풍성한 기분이 좋다. 그림을 보면서 작가가 본 ‘그때 그곳’의 기분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 공기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나는 러시아의 겨울을 좋아한다.

온도는 분명 한국보다 낮은데,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그리고 하-얀 순백색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그리고 눈밭을 비추는 빛이 눈 결정체 위에서 반짝이는 걸 볼 때,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나는 비싼 보석을 사지 않고도 공짜로 누릴 수 있다니! 싶어 행복해지기도 했다. 또 겨울에 석양이 질 때는 노을의 따스함과 흰 땅이 어우러져 더 따뜻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기분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고, 상상이 충분히 가기도 했다. 이래서 인생에서 예술이 꼭 필요하다는 걸까?


이런 풍경화를 살까 고민하다가 내 눈에 확 꽂히는 뜻밖의 그림을 보게 됐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내돈내산 그림이 생겼다.


그림 파는 아저씨는 그림은 네 마음에 들면 사는 거니까, 마음에 들면 사고 아니면 사지 마라고 하면서도 “너네 한국 사람 한 명, 너랑 되게 닮은 사람이 2주 전에 여기서 그림 4점 사갔어! 난 그 사람이 또 온 줄 알았네” 하면서 “예쁜 아가씨들이니 깎아준다 “며 또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었다.


바실리 파라호드라는 지금 현시대에 살고 있는 화가의 그림인데, 이미 이 사람의 그림들이 따로 전시돼 있는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그냥 좋아서’ 산 그림이지만, 이제 내가 투자한 내 그림이 되었으니 이 화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지. 보통은 알아보고 구매하는.. 반대의 방식을 취하지만.. 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그만인 것 아니겠어? 하며 질러버렸다.


처음으로 내돈 주고 그림 산 날! 역사적인 오늘이다. (?)


집에 와서 다시 보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연인들이 별빛이 수놓아진 하늘 아래서 저마다 사랑의 순간을 나누고 있으며, 천사가 꽃을 들고 나는 모습이 그 낭만을 더하는 것 같다. 엉덩이만 뽁 올라온 오리도 귀여웠고, 저 멀리로 보이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쿠폴이 이곳이 러시아임을 알려주고 있다. 러시아의 낭만이 담겨 보는 내 마음이 풍성해졌다.


이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으려나? 그림 하나로 별의 별 상상을 다해보았다. 이런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려나?


그리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저물어 가는 나의 풍요롭고 행복한 일요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면 또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야 하는.. 그런 현실이지만 뭐 어쩌겠냐! 고 주입하며..


이 일요일이 가는 게 아쉬워, 차 한잔도 내가 평소 좋아하는 주전자를 꺼내 마시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 볼까 했다. 오롯이 나의 의지로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삶이란 어떨까?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쩐지 가는 이 밤이 더 아쉬웠다.


하지만, 그 5일의 고통이 있으니 이 2일의 행복이 더 크고 달콤히 다가오는 거겠지, 돈 벌어서 또 내가 좋아하는 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감사함도 있는 거겠지,라고 마음을 다 잡으면서 또 차 한잔을 다시 따라보았다.



직장 생활 자체가 참 녹록지 않은데, 심지어 내 시간의 절반 하고도 그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니 참 쉽지 않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5일 덕에 있는 달콤한 2일을 생각하며 겸허히 월요일을 맞이하고자 한다.


매일이 일요일이기만 하면 또 그 달콤함이 지루해질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일요일을 또 보내주고자 한다.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의 월요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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