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한다고 갑질했다

남편에게

by 박수지

조리원 퇴소하고 집으로 온 첫날부터 새벽수유를 자처했다.

무지했기에 용감했을 수도 있다.


분유수유의 장점은 남편도 할 수 있다라는데...

출근하는 남편 힘들까 봐, 평일은 그냥 내가 하겠다 한 과거의 나 자신 멱살 잡고 싶다.

새벽 6시 반에 출근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날 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6시 반에 남편이 출근하고, 하루의 12시간을 아이와 단둘이 보냈다.

다행히 3주(15일) 간은 산후도우미분 덕에 새벽수유로 못 잔 잠을 이루기도 했고, 편히 밥도 먹었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진짜 둘만 남겨지고 나서야 현실 육아에 허덕이는 내가 였다.


먹고, 자고, 싸고 그리고 우는 아기만 보는 내가 하는 거라곤, 계만 하염없이 보는 거였다.


남편 퇴근까지 10시간...

남편 퇴근까지 5시간...

남편 퇴근까지 2시간...

남편 퇴근... 전화가 왜 안 오지?

가끔 늦어지면 초조해졌다.

오매불망 남편만 기다리는 내가 한심했지만, 나의 유일한 희망은 남편뿐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도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영혼 탈출한 아내 케어와 아기 육아를 쉴 틈 없이 시작한다.


6시~6시 반에 집에 도착하면

인계받은 아기와 잠시 놀다가,

7시~7시 반에 목욕을 시키고, 수유를 하고, 잠을 재우면 8시가 된다.


8시부터는 곧장 부엌에 들어가 저녁밥을 짓는다.

신혼 때부터 요리담당이었던 남편은 이제 자연스레 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인 듯, 야식처럼 저녁을 다 먹으면, 저녁 설거지와 젖병세척까지 끝내야 남편의 일과도 끝이 난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그렇다고 나도 마냥 쉬는 건 아니다...

아기가 내 품에 없을 뿐...

아기 잠자리 정리, 거실 정리, 목욕 후 욕실 정리 겸 욕조 청소, 분유포트 세척 그리고 빨래와 간혹 설거지를 미리 해주기도 한다.


다행히 남편이 육아참여도가 높아 우린 잘 헤쳐나가고 있구나 하며 자화자찬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지야, 오빠가 집에 오면 수지 눈치를 너무 보게 돼."


남편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 말을 수없이 되새기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남편에 못한 답을 했다.


"오빠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내가 집에서 육아한다고 나만 힘들다 여겼던 거 같다. 내가 육아한다는 이유로 오빠한테 갑질을 한 거 같다. 그 부분은 미안하다."


남편에게 사과했다.

육아를 한다는 이유로 나는 남편한테 갑질을 했다.


남편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일을 하고, 집에서는 육아를 하고, 주말에는 새벽수유 담당이었기에 어찌 보면 남편도 일주일 내내 잘 쉬지 못하고, 잠도 못 잔 건 마찬가지였 텐데.


그런 남편에게 찡찡거리고, 힘드니깐 나도 모르게 인상 팍 쓰고, 내가 정한... 아니, 나만 정한 육아방식에 들어맞지 않으면 말이 날카롭게 나갔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남편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었을지 안다.

안 그래도 예민하게 구는 아내에게 저 말이 불씨가 되어 부부싸움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 남편이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하루종일 육아를 했다는 이유로 퇴근한 남편에게 인상만 팍팍 써 주름살이 자글거리는 바가지 긁는 아내가 되었을 거다.


또한,

'네가 집에서 하는 일이 대체 뭐야?'

'애 하나 보는 게 힘들어?'

'난 일하고 왔으니, 좀 쉬어야겠어.'

등의 멍청한 남자의 어록을 쓰지 않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닌, 함께해 주어 고마워.

가~~ 끔은 답답할 때도 있지만,

남편도 내게 그런 부분을 보아도 흐린 눈 하고 있을 거라 여기며, 서로를 자신에게 맞추기보다는 서로 이해해 주는 우리 부부의 육아는 아마 앞으로도 아무 탈 없을 거라 믿어야지, 어쩌겠어?


이미 반품&환불 불가인걸.


아빠 품에서 낮잠


작가의 이전글육아가 직장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