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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지 Aug 22. 2024

육아한다고 갑질했다

남편에게

조리원 퇴소하고 집으로 온 첫날부터 새벽수유를 자처했다.

무지했기에 용감했을 수도 있다.


분유수유의 장점은 남편도 할 수 있다라는데...

출근하는 남편 힘들까 봐, 평일은 그냥 내가 하겠다 한 과거의 나 자신  멱살 잡고 싶다.

새벽 6시 반에 출근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날 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6시 반에 남편이 출근하고, 하루의 12시간을 아이와 단둘이 보냈다.

다행히 3주(15일) 간은 산후도우미분 덕에 새벽수유로 못 잔 잠을 이루기도 했고, 편히 밥도 먹었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진짜 둘만 남겨지고 나서야 현실 육아에 허덕이는 내가 였다.


먹고, 자고, 싸고 그리고 우는 아기만 보 내가 하는 거라곤, 계만 하염없이 보는 거였다.


남편 퇴근까지 10시간...

남편 퇴근까지 5시간...

남편 퇴근까지 2시간...

남편 퇴근... 전화가 왜 안 오지?

가끔 늦어지면 초조해졌다.

오매불망 남편만 기다리는 내가 한심했지만, 나의 유일한 희망은 남편뿐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도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영혼 탈출한 아내 케어와 아기 육아를 쉴 틈 없이 시작한다.


6시~6시 반에 집에 도착하면

인계받은 아기와 잠시 놀다가,

7시~7시 반에 목욕을 시키고, 수유를 하고, 잠을 재우면 8시가 된다.


8시부터는 곧장 부엌에 들어가 저녁밥을 짓는다.

신혼 때부터 요리담당이었던 남편은 이제 자연스레 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인 듯, 야식처럼 저녁을 다 먹으면, 저녁 설거지와 젖병세척까지 끝내야 남편의 일과도 끝이 난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그렇다고 나도 마냥 쉬는 건 아니다...

아기가 내 품에 없을 뿐...

아기 잠자리 정리, 거실 정리, 목욕 후 욕실 정리 겸 욕조 청소, 분유포트 세척 그리고 빨래와 간혹 설거지를 미리 해주기도 한다.


다행히 남편이 육아참여도가 높아 우린 잘 헤쳐나가고 있구나 하며 자화자찬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지야, 오빠가 집에 오면 수지 눈치를 너무 보게 돼."


남편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 말을 수없이 되새기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남편에 못한 답을 했다.


"오빠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내가 집에서 육아한다고 나만 힘들다 여겼던 거 같다. 내가 육아한다는 이유로 오빠한테 갑질을 한 거 같다. 그 부분은 미안하다."


남편에게 사과했다.

육아를 한다는 이유로 나는 남편한테 갑질을 했다.


남편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일을 하고, 집에서는 육아를 하고, 주말에는 새벽수유 담당이었기에 어찌 보면 남편도 일주일 내내 잘 쉬지 못하고, 잠도 못 잔 건 마찬가지였 텐데.


그런 남편에게 찡찡거리고, 힘드니깐 나도 모르게 인상 팍 쓰고, 내가 정한... 아니, 나만 정한 육아방식에 들어맞지 않으면 말이 날카롭게 나갔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남편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었을지 안다.

안 그래도 예민하게 구는 아내에게 저 말이 불씨가 되어 부부싸움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 남편이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하루종일 육아를 했다는 이유로 퇴근한 남편에게 인상만 팍팍 써 주름살이 자글거리는 바가지 긁는 아내가 되었을 거다.


또한,

'네가 집에서 하는 일이 대체 뭐야?'

'애 하나 보는 게 힘들어?'

'난 일하고 왔으니, 좀 쉬어야겠어.'

등의 멍청한 남자의 어록을 쓰지 않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닌, 함께해 주어 고마워.

가~~ 끔은 답답할 때 있지만,

남편도 내게 그런 부분을 보아도 흐린 눈 하고 있을 거라 여기며, 서로를 자신에게 맞추기보다는 서로 이해해 주는 우리 부부의 육아는 아마 앞으로도 아무 탈 없을 거라 믿어야지, 어쩌겠어?


이미 반품&환불 불가인걸.


아빠 품에서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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