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비행기에서의 만남들

by 수록


장거리 비행에서는 화장실 갈 일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창가에 앉지 않는다. 물론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게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유가 더 중요하다. 혹시나 안에 앉으면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두세 번을 건네야 한다. 그래서 대체로 우측 열 복도 쪽 자리에 앉는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굳이 왜 우측 열에 앉느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이유는 없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우측 열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비행기에서는 자리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주변에 앉는 사람이다. 기본적인 매너와 배려가 없는 사람이 주변에 앉는다면 그 비행은 최악의 비행이 될 수도 있다. 한 번은 미국을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 편에서 아이들 무리와 같이 탔었던 적이 있다. 우리 뒷좌석에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이 줄줄이 앉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시끄럽게 카드게임을 했다. 주의를 몇 번을 줘도 당최 말을 들어먹지 않았던 꼬마 녀석들. 지금에서야 그냥 웃어넘기지만 당시에는 꽤나 스트레스였다. 또 한 번은 파리에 가는 비행 편에서 한 가족이 내 옆과 뒤에 앉았었는데 매우 불쾌한 일이 있었다. 자다 일어나 보니 누가 방귀를 뀌었다며 큰 소리로 불평을 하고 있었는데 그 가족의 둘째였다. 비속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무시하고 잠을 청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한 언어를 던지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주변에 한국인이 나밖에 없어서 그 불쾌한 언어를 나만 알아듣고 있었다. 끝내 나는 참지 못하고 조용히 해달라며 부탁했는데 오히려 나에게 성을 내는 것이었다. 안될 사람이구나 하고 말을 말았다. 마침 비행기가 다소 연착이 되어 늦어졌는데, 내리면서까지 승무원에게 환승을 못하면 책임질 거냐며 화를 내고 있었다. 내 인생 최악의 비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비행도 종종 있었다. 바르셀로나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적이 있다. 평소처럼 우측 열 복도 쪽에 앉았는데 내 주변에 아버지뻘 되시는 한국분들이 줄줄이 앉으셨다. 심심하셨는지 나에게 자꾸 말을 거셨다. 처음에는 조용히 가고 싶어서 이러다 마시겠지 했는데, 멈추지 않고 말을 거셨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꽤나 재미있었다. 여수에서 오셨다는 아버님들은 일을 하러 몬테비데오까지 가신다고 했다. 동향 사람들을 만난 것도 신기한데 몬테비데오까지 가신다니. 몬테비데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우루과이의 수도였다. 아버님들은 국내 건설현장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숙련공이셨고, 몬테비데오의 건설현장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셨던 것이었다. 비행기가 처음이셨는지 모든 걸 신기해하시고 생소해하셨다. 기내식을 시켜도 나를 따라서 ‘통일! 통일!’을 외치셨고, 술을 주구장창 시켜서 많이도 드셨다. 나중에는 계속 시키는 게 여로우셨는지 나에게 시켜달라고 부탁까지 하셨다.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지만 꽤나 아쉬웠다. 잠만 자다가 끝날 수 있는 비행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신 아버님들에게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나 비행은 무섭고 두렵다. 겁이 많은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를 올릴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는 살려 달라는 기도보다는 좋은 비행을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겠다. 비행도 여행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음엔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제발 좋은 사람만 만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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