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나 한 듯이 이루어진
사고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만남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거나, 먼 이국 땅에서 오래 알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전생에 얼마나 많이 옷깃을 스쳤길래. 그렇게 보면 세상 참 좁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나 여행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한 번은 바르셀로나에서 6년 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졸업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먼 타지라서 그런지 유독 반갑고 신기했다.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뒤로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또 한 번은 그라나다에서 동행을 했던 사람을 포르투에서 우연히 만났던 경험도 있다. 나름 유럽 땅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만나는 게 참 쉬웠다.
반면에 전혀 모르는 사람과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스페인을 돌면서 몬세라트를 간 적이 있었다. 혼자 가는 유럽이 처음이다 보니 준비를 많이 하고 갔었는데, 그날도 조사해 온 ‘몬세라트 가는 법’을 손에 꼭 쥔 채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몬세라트는 가는 법이 꽤나 복잡해서 바르셀로나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다른 전철로 환승해 가야 했다. 운 좋게 지하철 자리에 앉아 환승역으로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 동양인 여성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유학생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옆 자리의 어머님과 같이 온 여행객이었다. 사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지하철을 내려서 굽이굽이 복잡한 통로를 지나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말을 거셨다.
여행 왔어요?
한국인이셨다.
나는 딸이랑 같이 왔어요.
멋있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따님이랑 여행하시는 어머님이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의도치 않은 동행이 시작되었다. 어머님은 따님이랑만 다니는 게 심심하셨는지 내게 계속 말을 건네셨다.
두 분은 꽤나 오랜 기간 여행을 했다고 하셨다. 바르셀로나는 두 모녀의 여행에서 막바지 즈음이었다. 나와 동갑인 첫째 딸은 직장에 들어가 버려서 같이 오지 못하고, 남편도 일을 하고 있어서 두 분만 다닌다고 하셨다. 심지어 따님과의 여행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몇 번이나 도장을 찍었다고 하셨다. 초보 여행자인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니신 느낌이었다.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것이, 대체로 이런 뜻밖의 동행은 서로 불편해하기 마련인데, 따님은 어머님과 나의 대화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두 분만 다녀서 심심했을 수도 있고, 또 그런 어머님의 성격을 잘 알아서 별 말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사투리를 쓰시는 것이 동향분 같아 여쭤봤더니 고향이 광주라고 하셨고,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우연의 우연이 겹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치 고모를 만난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이윽고 전철이 도착했고, 우리는 어색했지만 자리도 같이 앉아서 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인사를 드리고 다른 칸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몬세라트를 올라가는 산악열차는 좌측 창가로 장관이 펼쳐지는데, 어머님과 따님에게 꼭 왼쪽에 앉아야 한다며 자리에 앉혔다. 고도가 높아지며 안개가 걷히자 정말 기가 막힌 장관이 펼쳐졌다. 두 분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작은 부분이지만 꽤나 뿌듯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게,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해서는 각자 구경을 했는데 내려가는 역에서 두 분을 또 만났다. 마치 언제 내려가자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바르셀로나에서 우연히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처럼, 그 어머님과 따님을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사고가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도 없이 작은 일들이 모여서 생겨난다. 만남도 인연도 같다. 결국에는 방향성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이 글에 그때 그 어머님과 따님을 적는 것처럼, 인생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이미 스쳐 지나가셨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