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해외를 나갔던 건 2013년 여름의 뉴욕 어학연수였다. 해외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던 인생에서 우연한 계기로 아주 멀리, 그것도 꽤나 오래 떠나게 되었었다. 집에서 보내주는 것도 아니었고 공모전 수상 특전으로 가는 연수였다. 해외 경험이 없다 보니 수중에 얼마를 들고 가야 할지도 몰랐고, 무엇을 챙겨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던 게, 한 달간 체류하는데 고작 20인치 캐리어를 들고 갔다. 집안에서도 해외를 처음 나가다 보니 이렇다 할 큰 캐리어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여름이라 옷의 부피가 적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길게 느껴졌던 시간은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르고 내 머릿속에는 가족을 위한 기념품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돈이 없어 1달러 피자로 생명을 연장하던 대학생이 과연 무슨 돈이 있었을까? 손에 들고 온 체류비는 고작 백만 원뿐이었는데 말이다.
특혜는 반드시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거의 모든 것은 특혜다.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지만 이것은 내 삶의 가치관이다. 가족들 중에 유일하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도 내게는 특혜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그 흔한 국내 여행도 자주 다니지 못하셨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기념품에 유독 집착한다. 기념품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 그나마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특혜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여행을 거듭할수록 더욱 확장되어갔고, 내 주변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캐리어의 절반이 선물로 가득 찼던 이유다. 처음 나갔던 뉴욕에서도 그랬고, 혼자 떠났던 프라하에서도 그랬고, 후쿠오카,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까지. 어딜 가든 나는 한아름 선물을 가져오는 산타 할아버지 같았다.
그러나 기념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은 꽤나 긴 과정을 흐른다. 단순히 선물을 사고,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향을 고려한 다음 그에 맞은 기념품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그걸 건넸을 때의 반응을 상상하며 뿌듯함과 두려움의 시간을 지낸다. 그 기나긴 과정이 주는 무게는 꽤나 무거워서 때로는 여행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스페인으로 장기 여행을 떠났을 때도 기념품을 꽤나 많이 사 왔다. 심지어 다 똑같은 기념품도 아니고 한 명 한 명 맞춤으로 준비했었다. 여행에 쓴 돈이 250만 원이었는데, 그중 80만 원이 기념품으로 쓴 돈이었다. 말 그대로 바게트 빵 하나로 버티면서 남 줄 선물을 사 온 것이었다. 힘든 취업준비 시절의 큰 힘이 되었던 모임의 친우들이었다. 어떻게든 기념품을 하나씩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러나 거진 열명쯤 되는 사람들의 취향을 하나하나 고려하고 그에 맞는 선물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지나간 도시와 숍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맞는 선물을 찾아 헤맸고, 이미 사버린 후에는 낙장불입이었다. 게다가 사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줄 만큼 돈이 많지도 않았다. 하나를 살 때마다 30분씩 고민하다가 결정했을 정도였다.
또 한 번은 회사를 들어간 뒤에 첫 휴가로 일본을 다녀왔을 때였다. 신입사원이기도 하고 입사 후 첫 여행이다 보니 팀원들을 잘 챙겨서 예쁨을 받고 싶었나 보다. 가까운 일본을 3박 4일로 다녀오는 것인데도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그나마 이때는 맞춤 선물이 아닌 똑같은 선물로 준비했다. 돈키호테에서 파는 수면안대와 휴족시간을 비롯해서 선물세트처럼 꾸며 선배들에게 하나씩 드렸다. 그것만 해서 대략 20만 원은 썼던 것 같다. 그 많은 선물들을 캐리어에 겨우 넣어 힘들게도 가져왔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여행을 자주 다녀오면서 기념품의 무게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게 기념품을 사다 주었던 그 시절 모임의 친우들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연락이 닿질 않고, 신입사원 때의 부장님은 내 선물을 받으시고는 회의를 소집해 해외여행 시 선물 사 오기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나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간단한 초콜릿이나 과자를 사 와 나누는 정도였고, 회사 밖의 친한 친구들도 작은 열쇠고리나 아무에게나 주어도 괜찮을 작고 귀여운 기념품 정도만 사 왔다. 나처럼 무겁게 기념품을 사 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과 압박에 비해 상대방이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정작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여행을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줄 선물을 고른다는 건 나름 행복한 일이다. 그걸 생각하는 것도, 고민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기념품이 아닌 여행 그 자체다. 기념품 가게에서의 적당한 머묾은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과하면 오히려 소중한 시간과 감정의 낭비가 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애인 정도면 모를까. 그렇게 기념품을 사 와서 나눠주던 나도 타인에게는 단 한 번도 기대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 호의이며 배려이기 때문이다. 받으면 엄청 기쁘지만 받지 못하더라도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기념품이란 그렇게 가벼운 것이다.
지금은 여행을 다녀오면 딱 다섯 명만 챙긴다. 어머니, 아버지, 형,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나. 그리고 선물을 주더라도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나 선물은 기쁠 때도, 탐탁지 않을 때도 있다. 그 감정은 상대방의 것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저 주는 것에만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을 살지 고민할 때도, 그것을 살 때도, 줄 때도 기쁘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오롯이 여행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하다 만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그렇게 화려하고 찬란했던 뉴욕에서 생활비를 아껴가며 나름 유명한 브랜드의 목도리와 핸드백을 부모님께 사다 드렸었다. 백만 원 남짓한 생활비에서 선물 살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났었는지를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사드렸던 것들 지금은 전혀 안 쓰신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취향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딱 맞는 기념품을 사다 줄 수 있을까. 그 후로 나는 아버지는 술, 어머니는 향수만 사다 드리곤 한다. 술과 향수는 적어도 장식품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