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단 한 번 먹는 요리

지치고 힘들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일 때, 기대하지 않았을 때

by 수록



어렸을 때부터 밥 먹을 때마다 항상 잔소리를 들었다. 유독 입이 짧고 편식이 심했던 탓이었다. 먹는 것에 대한 유전자는 형이 다 가져간 것 같았다. 잘 안 먹고 삐쩍 마른 동생에 비해 형은 무엇이든 잘 먹고 매우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상대적으로도 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죽하면 형보다 더 먹는다는 걸 보여 드리기 위해서 식사가 끝나도 오기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물론 형의 한 숟가락은 내 두세 배는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먹는 것을 싫어하거나 무작정 입이 짧은 것은 아니었다. 변명을 하자면 어려서부터 자리 잡은 나름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일단 삼시세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특히 과자 같은 가공식품은 입에 잘 가져가지 않았다. 밥 외에 먹는 건 우유나 주스 같은 음료뿐이었다. 그리고 매우 천천히 그리고 많이 씹었다. 잘 씹지 않고 넘기면 위에서 소화가 잘 안된다고 배웠던 탓이었는지 한 입 넣고 계속 오물거리는 게 식습관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나 몰래 내가 몇 번 씹는지 세어보기까지 했다. 대충 40~50번 씹는다고 하였다. 언제나 급식을 먹으면 가장 마지막에 일어났고, 매점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이미지는 "잘 안 먹는 아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행의 재미는 눈과 혀가 전부가 아니던가. 이러한 나라도 여행에서 식도락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 나라를 가면 그 나라의 전통 요리를 먹어보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고 여행의 묘미였다. 게다가 다시 한번 변명하지만 나는 이래 봬도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많이 먹지를 않을 뿐. 아무튼 어딜 가든 눈은 항상 뜨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호강을 한다지만, 혀가 호강하려면 꽤나 노력을 해야 함과 동시에 운도 좋아야 했다. 더군다나 물가가 싼 나라로 가는 거라면 부담 없이 즐기겠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으로 가면 꽤나 비싼 돈을 지불해야만 어느 정도의 맛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아, 영국은 빼겠다. 돈을 줘도 쉽게 먹지 못했다.


이나라 저나라 여행을 다니면서 나름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기 위해서 발품을 팔았다. 열심히 인터넷과 어플을 뒤져서 평점과 반응이 좋은 식당을 찾고, 굳이 먼 길을 찾아가서 줄 서서 기다린 끝에 결국 그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노력 끝에 오는 보상은 생각만큼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운이 나빴던 것이었는지, 입맛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먹을만하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는 경험은 그다지 하지 못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맛있는 음식들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다. 때는 이베리아 반도를 한 바퀴 돌던 중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여행의 후반부여서 체력도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비바람을 맞았더니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리스본에서 만나기로 한 동행들과의 약속을 일단 미루고 잠시나마 잠을 청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었고, 저녁도 먹을 겸 늦게라도 동행들에 합류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환대를 해주었고, 근처에 문어 국밥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때의 그 문어 국밥, 바로 그 음식이었다. 인생에서 딱 한 번만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때 그 문어 국밥은 따뜻한 온기로 피로가 쌓인 온 몸을 포근하게 녹여주었다. 잊지 못할 음식이었다. 따뜻한 국물이라고는 수프 밖에 없는 유럽에서 처음 만난 국물 음식이었다. 열심히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을 그렇게 우연히 만났던 것이다.


얼마 안 가 이런 경험을 한 번 더 하게 되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음식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를 모르겠다. 먼저 한 가지 얘기를 하자면, 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못 먹는 음식 두 가지를 얘기한다. 바로 사과와 김치다. 사과는 씹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아서 아예 먹지를 못하는 음식이고, 김치는 젓갈 향을 맡지 못해서 입에 대지 못한다. 아무튼 나는 스페인 여행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도시인 마드리드에 닿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자 식당을 열심히 찾는데 아무 음식도 끌리지 않았다. 여행이 길어 향수가 도졌는지 갑자기 한식당을 너무 가고 싶었고, 마침 숙소 근처에 하나가 있었다. 워낙에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지만 본능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무작정 가게에 가서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대충 밑반찬 두세 개와 돌솥비빔밥이 하나 나왔는데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아까워서 안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입에도 안 대던 김치를 한 입 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김치가 아니었다. 나에겐 떡볶이이고 징거버거이며 제육볶음과도 같았다. 스페인 김치가 잘 맞는 게 아니냐고 의심할까 봐 말하자면, 그때의 그 김치를 비롯해서 잡채, 찌개, 반찬들 모두 정말 맛있었다. 명절마다 고흥 할머니 집에서 해 먹는 음식들과 다를 바가 없는 진짜 한식이었다. 나는 주방에 한국인이 있는 건 아닌지 계속 기웃거릴 정도였다.


그 외에도 좋은 사람들과 한 시간 반을 걸어가서 먹었던 문어 스테이크라던지, 먹어본 적 없어서 기대도 안 했던 에그타르트라던지, 지나가다 사람들 줄 서 있어서 우연히 먹었던 우육탕면이라던지, 맛있는 음식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음식들은 평생에 딱 한 번, 그때 그 순간에만 먹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국밥을 다시는 먹어볼 수 없었고, 김치도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겐 김치는 맛없는 음식이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은 열심히 찾아다닌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눌 때, 몸이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우연히 음식을 만날 때,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심코 먹었을 때 이따금씩 찾아오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맛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즐거움이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물론 좋다. 그 자체의 즐거움이 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를 가지려고 노력하거나, 계획 없이 떠돌다가 만나는 음식점을 기대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생각보다 행복은 뜻하지 않을 때 자주 찾아오는 법이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념품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