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록 Jun 09. 2020

공채의 종말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국내 4대 그룹이라는 엘지그룹이 오늘 정기 공채를 폐지한다는 기사를 냈다. 작년 말에는 케이티가 정기 공채를 폐지했다. 그 외에 수많은 대기업들도 공채를 폐지하였고, 앞으로도 폐지 예정이다. 바야흐로 공채 시대의 종말이다. 이제 대학을 나와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취업준비를 하던 시대는 끝났다. 단순히 학문을 공부하고 졸업한 대학생들이 취업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공채 시대의 종말은 단순히 채용 시장의 변화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사회적 함의가 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넘어가기 힘들어서 글을 쓴다.

 공채 제도가 동아시아권만의 문화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공서열, 호봉제, 공채 등의 문화는 일본과 한국 등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만 존재하는 특이한 채용 제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채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물론 동의하는 바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이 시대에 공채 시스템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식이다. 또한 공채 시스템이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연공서열, 호봉제, 공채 중심의 골품제도 등이 따라서 무너지게 된다. 기업 문화와 생산성은 더 개선될 것이며 그로 인해 경쟁력은 강화될 것이다. 기업에게도, 국가에게도 매우 자연스럽고 좋은 현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채 제도가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채 시스템은 국가의 복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일자리 생산이다.

 국가의 복지란 무엇인가? 국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이 굶어 죽지 않도록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직접 돈을 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간접적으로 돈을 주는 것, 즉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미 돈을 주고 있다. 노인 연금이라든지 국민 연금 같은 각종 사회 보장 제도를 마련해두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줄 수는 없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해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의 일자리 사업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꼬리를 물고 생각해보자. 정부는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정부가 직접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하나고, 기업을 통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하나다.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 사업을 실시하거나 있는 자리를 둘로 쪼개거나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한시적이고 생산적이지도 않으며 국가 재정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포퓰리즘의 장단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방향의 포퓰리즘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건강한 흐름은 기업이 많이 생겨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경제가 활성화되더라도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업무를 자동화시키면서 일자리를 없애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인공지능에 대한 글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깊은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자 그럼 이제 공채가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해버려서 일자리를 만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로 뿜어져 나오는 젊은 사람들이 앉을 의자가 없다. 그나마 대기업 공채는 이러한 시대에서 기업이 제공하는 작은 의무와 책임이었다. 막대한 생산수단과 매출을 뽑아내는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자리가 점점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그나마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수단이었다. 공채가 폐지되면 500명을 뽑던 기업들은 그 숫자를 자유롭게 조정하게 될 것이다. 50명이 뽑힐 수도 5명이 뽑힐 수도 있다. 늘어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드시 누군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연구를 할 것이라 본다. 2~3년 뒤에 과연 공채 시기보다 상시 채용 시대에 채용 인원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국민은 굶어 죽는다. 그렇다면 국가는 유지되지 못한다. 소수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국민은 더욱 노력하고 경쟁한다. 그러나 정작 의자를 차지하는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들이나 상속자들 뿐이다. 정부는 일자리가 없는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가 재정을 투입해 정부 사업을 실시하고 공공 일자리를 확대한다. 정부는 점점 가난해지고 국가는 병들어간다. 정부는 절대 사기업의 채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정부가 압박할 수 있는 건 구조조정을 막는 것뿐이다. 그런 시점에서 공채는 그나마, 아주 그나마, 기업이라는 존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나는 공채를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공채가 사라지면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정부와 기업과 국민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채가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순리이다. 그걸 보존하라고 기업들에게 강제할 수도 없다.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로 인해 생겨나는 구멍을 어떻게 메꿀지 생각해보자고 해야 한다. 기본 소득이라든지,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 흐름을 기업이 앞장서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정부가, 정치인이, 국민이 앞장설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일자리를 잃고 굶어 죽게 된다면 기업은 과연 살아 있을까? 건강한 자본의 흐름을 위해서는 기업이 나서서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저 시대의 흐름이 이러니 우리는 공채 폐지하겠다고 치고 빠질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사람들에게, 특히나 청년들에게 드라마 송곳에서의 명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인간은 빼앗으면 화를 내고 저항하고 맞서 싸운다. 그게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순응하지 말자. 지금 우리 밥그릇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잔은 더 먹은 카페 창가에 앉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