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모래언덕, 홍고링 엘스
살면서 사막에 가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살면서 달에 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애초에 가능성도, 관심도 별로 없는, 스쳐 지나가는 영역인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스물두 살 때까지 내가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우리 집은 그다지 부유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을 더불어서 일가친척들 중에 해외를 다녀오거나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멀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제주, 경주, 서울 정도였으며, 심지어 제주도도 배를 타고 갔다. 그렇다 보니 해외여행이나 비행기는 전혀 선택지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쩌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던 것들을 하나씩 하면서 살고 있다. 세상이 참 좋아졌고, 나의 삶도 많이 부유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몽골에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사막을 만나고, 낙타를 탔다. 밤하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던 잡히지 않던 달이 눈앞에, 내 발아래 펼쳐진 것이다.
낙타를 타자
우리는 일단 게르 캠프에 짐을 풀고 낙타 체험을 하러 갔다. 메르스 창궐 당시 티브이에서 들으며 코웃음 치던 게 엊그제 같았다. 도대체 살면서 낙타를 만질 일이 있어?! 있었다. 바로 몽골에서. 낙타 체험은 몽골 여행의 백미라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낙타 체험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일전에 낙타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기사도 읽었었고, 낙타를 타면 신발, 바지 등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타를 눈앞에 두고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말을 탔던 것처럼 줄을 줄줄 꿰어서 한 마리씩 올라탔다.
낙타는 정말 키가 컸다. 대략 2미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속도가 매우 느렸다. 느릿느릿 걸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낙타의 침이었다. 낙타를 탄 뒤 신발과 바지를 왜 버리는지 궁금했는데, 낙타가 고개를 돌려서 다리에 침을 묻히거나, 앞이나 뒤에 있던 낙타가 다가와서 다리에 침을 묻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아도 그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이다.
내 친구 이지
욜링암에서 만났던 나의 친구 리버를 뒤로 하고 새롭게 사귀게 된 낙타 친구 이지. 나는 왜 내가 탄 낙타를 ‘이지’라고 불렀을까? 보통 영화를 보면 동물들을 진정시킬 때 “Easy~”라고 하기 때문! 나는 타자마자 낙타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이지를 외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지는 정말 이지하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침을 묻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뒤에 타고 있던 DS는 자꾸 들이대는 낙타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다. 고마웠어, 이지!
노래하는 모래언덕, 홍고링 엘스
고비 사막은 몽골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울란바타르를 떠나 차강 소브라가와 바얀작을 지나면 고비 사막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향한 곳은 고비 사막에서도 가장 유명한 홍고링 엘스. 바람이 불어 모래가 모여들어 만들어진 사막이어서 ‘노래하는 모래언덕’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그만큼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바람이 많이 불지는 않았다.
낙타 체험을 끝내면 마지막 코스로 바로 이 홍고링 엘스 사구에 오르게 된다. 푸르공을 타고 부릉부릉 달려서 사구 앞에 내리게 되는데, 플라스틱 썰매를 하나씩 들고 등반을 하게 된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동네 뒷동산보다 낮은 느낌인데,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의 특성 때문에 오르는데만 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썰매의 용도는 사구의 정상에서 한 번에 내려오기 위한 것..!
사구를 오르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날씨가 매우 건조한 탓에 몇 발 자국 걷자마자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발은 푹푹 빠져서 빠르게 지쳐갔고,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등산 마스터 아니던가. 멀리 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는 정상이 다가와 있었다. 먼저 올라와서 쉬고 있던 다른 관광객들은 사람들이 올라올 때마다 박수를 쳐주며 환영했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연대였다.
사구 위에서 내려다본 사막은 정말 절경이었다. 세상이 모두 멈춰 있는 것 같았고, 나의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스페인을 갔을 때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들 앞에서 많은 감동을 느꼈었는데, 몽골은 대자연이 주는 성스러운 감동이 몰려왔다. 저 멀리 사막 너머로 점점 사라져 가는 해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려온 2년 반 동안의 회사 생활. 나는 도대체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종식시켰다.
그렇게 한참을 여유롭게 보내다가 마침내 밑으로 내려가는 시간! 그러나 중력과 가속도의 법칙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사구를 오르기 힘든 이유가 경사가 심해서인 것도 있는데, 내려갈 때는 그 경사가 정말 아찔하다. 브레이크 없이는 그대로 땅에 박히거나, 어디에 부딪혀 날아가거나, 데굴데굴 구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상 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내려갈 코스를 찾고 있었다. 어느 용감한 사람이 하나 둘 길을 뚫자 그 뒤로 사람들이 줄지어 출발했다. 나도 적당히 앞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렇게 가면 죽겠구나, 아 저렇게 가면 살겠구나를 생각하며 출발했다. 양다리를 옆으로 꺼낸 채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달리는 모래 썰매! 정말 빠르고, 정말 신나고, 정말 시원하며, 정말 재밌다.
살면서 사막에 가보거나, 낙타를 타보거나, 모래 썰매 안 타볼 것 같죠? 가까운 몽골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