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강 소브라가와 바얀작
몽골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세계의 절경을 모두 모아둔 곳’이라고 하고 싶다. 간달프가 뛰어 내려올 것 같은 뉴질랜드의 협곡도, 헬리콥터가 날아다닐 것 같은 미서부의 그랜드 캐니언도, 스콜피온 킹이 튀어나올 것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도, 모두 그곳에 있다. 그것이 다소 퍽퍽한 양고기를 만나더라도, 벌레와 함께 잠들더라도, 엉덩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차를 타고 이동을 하더라도, 모두가 용서가 되는 이유였다.
하얀 불탑, 차강 소브라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만났던 곳은 몽골의 작은 그랜드 캐년, 차강 소브라가였다. 차강 소브라가는 아시아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린다. 울란바타르에서 굉장히 먼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다른 관광지는 더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부 여행의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곳은 오랜 지질 활동을 통해 퇴적층이 형성되어 그 모습이 절경이다. 과거에 바다였다고 하는데 상상이 가지 않았다. 몽골어로 차강 소브라가는 하얀 불탑이라는 뜻인데, 그 말처럼 군데군데 하얀 뿔이 듬성듬성 나있다.
와우를 해본 사람들이 있다면, 혹여 오그리마로 향해 본 사람이 있다면 외칠 것이다. 불모의 땅! 듀로탄! 블리자드가 이곳을 보고 듀로탄을 만든 것인가 싶을 정도로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펄쩍펄쩍 뛰면서 달려 다니고 싶을 정도로.
언덕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찔하고 무섭지만 밑으로 내려가서 위를 올려다보면 그 장엄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해 질 녘 노을을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해가 지기 전에 게르 캠프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해야 했다.
불타는 절벽, 바얀작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나는 펄쩍펄쩍 뛰어다닐 수 있었다. 바로 불타는 절벽 바얀작에서! 차강 소브라가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고비 사막에 닿기 전에 만나는 곳이 바로 불타는 절벽, 바얀작이다.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이름. 하얀 불탑이었던 차강 소브라가와는 다르게 바얀작은 불타는 절벽이라는 별명처럼 온통 붉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반드시 해 질 녘 노을을 봐야 하는데, 노을이 쏟아질 때 불타는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얀작은 차강 소브라가보다도 더 듀로탄스러운 느낌을 준다. 게다가 트랙킹을 할 수 있을 만큼 그 넓이가 광활해서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장소도 많고,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온다.
작은 가시나무, 작
바얀작을 돌아다니다 보면 키가 작은 가시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이 ‘작’이라는 식물 때문에 바얀작, '작이 많은 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작이 많았지만, 지금은 사막화가 많이 진행되어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내가 만난 아이가 작인지는 모르겠다.
기념품은 바얀작에서
바얀작 입구에는 몽골의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은데, 어딜 가도 이곳처럼 예쁘고 좋은 낙타 인형을 만날 수 없으니 반드시 여기서 구매하길 바란다! 상인들이 근처에 게르를 치고 직접 만든 인형들을 파시는데, 실제로 울란바타르의 시내 국영백화점이나 기념품샵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게다가 어느정도 흥정도 가능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바얀작을 펄쩍펄쩍 뛰어다닌 이야기를 못했는데, 바로 이 낙타 인형 때문이었다. 바얀작에서 한창 사진을 찍고 돌아온 우리는 낙타 인형을 사기 위해 지갑을 찾았는데, YG가 지갑이 없어졌다고 했다. 아무리 뒤져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YG가 바얀작에서 사진을 찍으며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해도 지고 있고, 배도 고프고, 게르 캠프로 빨리 돌아가야 하기에 나는 기다리라고 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친구 J도 왜 뛰냐며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빨리 지갑을 찾아오고 싶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뛰고 싶었다. 이 듀로탄 같은 바얀작을. 평소에도 달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이 절경을 눈에 담는 것 뿐만 아니라 발에도, 다리에도, 숨에도 담고 싶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바얀작을 뛰는 건 정말 기분이 좋았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J와 함께 때아닌 런닝맨을 찍으며 결국 단체사진을 찍었던 곳에서 YG의 지갑을 찾아왔다. YG,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뛰고 싶었어. 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우리는 게르 캠프로 돌아갔고, 그 여운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첫째 날의 차강 소브라가와 둘째 날의 바얀작은 그저 몽골 여행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