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고기와 올드 보이
몽골에서의 삼시 세끼를 떠올리면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난다.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감금되어 15년간 군만두만 먹는다. 몽골과 올드보이의 공통점은 한 가지 음식을 계속 먹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몽골의 대표 식재료인 양고기! 몽골의 삼시 세끼는 양고기로 시작해서 양고기로 끝난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인 것 같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는 천혜의 땅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닭, 소, 돼지, 오리 등 다양한 육고기까지 맛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식이라는 고유의 식문화가 존재하고 지역별로도 음식이 매우 발달한 듯하다. 그러나 몽골은 내륙에 있는 국가기 때문에 일단 해산물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국토의 대부분이 초원이거나, 협곡이거나, 사막이다. 채소가 굉장히 귀하고 고기도 양고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인 맛집 탐방, 디저트 뭐 이런 거는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카페도 큰 도시를 가지 않고서야 만날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그렇다고 몽골이 맛이라고는 1도 없는 나라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맛있는 양고기는 정말 소고기 못지않게 맛이 좋으며, 몽골 전통 음식이라고 하는 허르헉은 우리나라의 족발이나 독일의 슈바인학센 못지않은 존맛탱의 반응을 이끌어 낼 것이다. 맛있는 지역으로 유명한 남도처럼 몽골이 대충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맛있는 곳은 아니지만 몽골이 자랑하는 음식을 하나 둘 먹다 보면 몽골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여행 준비에 진심이었던 우리
우리는 양고기에 적응하기 위해(?) 몽골로 떠나기 전 사전 미팅으로 양꼬치집을 갔다. 당시 지방에 살고 있던 나와 J는 크루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까지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는 음식에 진심인 DS의 손에 이끌려 양꼬치가 유명하다는 건대 자양동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생애 처음 양고기를 먹었다. 은은한 불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양꼬치와 양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비싼 음식만 아니라면 밥먹듯이 먹고 싶을 정도였다. 나, 양고기 좋아하네?!라고 생각하며 몽골에서 먹게 될 양고기를 잔뜩 기대하면서 여행을 기다렸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먹기 위해서 여행을 다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더라도 크게 상관한 적이 없었다.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는 바게트 빵 하나와 주스 한 통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사흘을 먹었었다. 그렇게 배를 쫄쫄 굶으며 가난하게 다녔음에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여행으로 남았다. 그러나 몽골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기대하고 들어간 몽골의 첫 음식점에서 나는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생각보다 나는 음식이 중요했고, 양고기는 아직 내게 낯선 음식이었던 것이다. 채소 없이는 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순전히 고기뿐인 식탁을 보며 당황했다. 양고기 수프, 양고기 볶음, 양고기 볶음밥 등등. 모든 음식에 양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니면 채소가 다양성이 부족해서였는지는 알지 못한 채, 다음에는 무조건 채소가 있는 메뉴를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였던가? 첫날에 비해 다음 날의 식사는 더 맛있었고, 다음 날의 식사보다는 그다음 날의 식사가 더 맛있었다. 메뉴를 고르는데도 노하우가 붙어서 적절히 양고기와 채소가 섞인 식탁을 구성할 수도 있었다.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이유는 숙소와도 관계가 깊었는데, 뒤로 갈수록 숙소가 더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좋을수록 숙소에서 나오는 음식은 더욱더 맛있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릇을 싹싹 긁어먹었다.
그렇게 꾸준히 우상향을 찍다가 마지막 정점을 찍은 것은 바로 몽골의 전통 음식 허르헉!!! 허르헉은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한다는 몽골의 전통 음식으로 양고기를 달궈진 돌과 함께 냄비에 넣어 쪄내는 독특한 음식이다. 생김새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했다. 거기에 돌을 달구는 화롯불에 감자를 넣어두면 그게 또 그렇게 맛있었다.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굿바이 밀로 허르헉을 먹을 수 있었다. 정말 맛있었고, 좋은 마무리였다.
몽골에는 허르헉 말고도 다른 전통 음식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운 좋게 먹게 된 것은 호쇼르라는 만두였다. 우리나라의 군만두와 매우 비슷한 음식인데, 매년 여름 열리는 몽골의 전통 축제인 나담 기간에는 호쇼르만 먹는다고 했다. 안에 양고기가 들어 있다는 것만 빼면 우리나라의 군만두와 다를 바가 없는 음식이었으며, 매우 맛있었다. 또 마유주라는 말젖으로 만든 몽골 전통주가 있는데, 낙타 체험을 하고 들른 한 가정집에서 주인께서 주셨다. 나는 술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한 모금씩 마유주를 즐겼다.
최후의 보루, 가이드!
너무 겁을 준 것 같지만 양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음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해도 아직 기회는 남았다. 바로 가이드 언니가 해주는 음식! 몽골은 가이드와 여행 기간 내내 함께 하며 식사를 할 수 없는 숙소에 묵게 되면 가이드가 직접 장을 봐서 음식을 해주신다.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언니는 서울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 음식을 많이 해주었다. 덕분에 라면도 끓여먹고, 삼겹살(이라고 쓰고 양고기라고 읽는다.)과 쌈 채소에 볶음밥까지 먹었다. 마지막 날에는 김치찌개까지 끓여주셔서 아주 포식을 했다.
결제도 하지 않은 조식을 제멋대로 먹어버리는 바람에 추가로 돈을 지불하기도 하고, 나담 축제 때문에 음식점이 전부 문을 닫아 힘들게 가게를 찾아다녔던 가이드 언니. 덕분에 우리는 낯선 몽골 음식을 아주 맛있게, 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