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5성급이에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3가지 요소는 의, 식, 주다. 입는 것과 먹는 것을 이야기했으니 나머지 하나는 바로 주. 어디서 자는가이다. 사실 여행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숙소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지만, 숙소를 가장 최우선으로 치는 사람도 꽤 많다. 순조로운 여행을 위해서는 숙소에서 잘 쉬고, 잘 자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치적으로 봐도 우리는 숙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몽골은 애초에 가이드와 여행 상품을 조율할 때 차량 선택과 더불어 숙소 컨디션도 결정을 하게 된다. 숙소의 컨디션이 좋아질수록 가격이 조금씩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선진국의 여행 경비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한 편이다. 우리 크루 중에 한 명인 JH는 숙소 컨디션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우리는 그에 맞춰 거의 만장일치로 최고로 좋은 숙소 컨디션을 요청하기로 했다. 온수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깔끔하고, 전기도 잘 들어오는...
몽골은 오직 게르!
그렇다. 온수, 화장실, 전기를 신경 써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몽골이다. 몽골에서의 숙소는 다른 여행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통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한인 민박 등을 이용할 것이다. 조금 더 컨디션을 높이고 싶다고 하면 비즈니스호텔이나 저렴한 호텔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몽골은?! 몽골에는 그런 게 없다. 몽골 여행의 숙소는 오직 게르. 게르라는 것뿐이다. 아 물론 대도시에 가면 다른 여행지와 비슷한 숙소들이 있겠지만, 우리의 몽골 여행은 대도시가 아닌 초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게르란 무엇인가?! 게르는 유목민족인 몽골 사람들이 계절마다 장소를 옮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전통 가옥이다. 유목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벼운 목재와 펠트를 주재료로 제작되며 조립과 해체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굉장히 거대하고 튼튼하지만 어른 두세 명만 있으면 한 시간 안에 해체와 조립이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관광객들을 위한 게르는 한가운데에 난방을 위한 난로(?)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고, 벽을 따라서 침대가 쭉 놓여 있다. 안타깝게도 화장실이 따로 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다소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혼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사실 몽골을 얕봤다. 위 사실을 대충 흘려들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군대 혹한기 훈련만 하겠느냐 생각했다. 나도 24인용 군용 천막 여러 번 쳐봤고, 칼날 같은 바닷바람 맞으며 야전침대에서 잠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돈바곱(돈벌레, 바퀴벌레, 꼽등이 삼총사)을 제외하고서는 벌레를 그다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몽골의 게르는... 음... 정말 혹한기 훈련이었다.
몽골의 여행은 몽골의 수도이자 대도시인 울란바타르를 떠나 남쪽 고비사막이나 북쪽 홉스골로 떠나는 여정을 담는다. 그래서 도시에서 묵지 않고 초원이나 사막 한가운데서 잠을 자게 된다. 첫날 숙소를 향해 갈 때, 도대체 어디에 숙소가 있단 말인가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초원 한가운데 게르가 몇 개 설치되어 있었다. 아 여기가 우리의 첫 숙소구나! 신기하게도 몽골의 숙소는 거의 모두 초원 한가운데 유스호스텔처럼 게르촌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관광지 주변으로 숙박업을 하는 몽골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첫 게르는 생각보다 더, 굉장히, 언빌리버블 하게 놀라웠다.
아이들의 표정은 돌을 씹은 것처럼 굳어져 있었다. 특히나 여자 아이들은 더욱더. 먼 거리를 달려온 여행객들에게 초원 한가운데 있는 게르 캠프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건만, 그 오아시스가 그다지 깨끗한 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의 컨디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는 숙소 컨디션을 최상으로 요청하며 요금을 잔뜩 지불했는데도 말이다. 일단 샤워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따뜻한 물도 없었으며, 찬물도 수압이 약해 냇물처럼 졸졸졸 흘렀다. 심지어 샤워실이 공용이라 내가 샤워하고 있는 바로 옆에 여자 아이가 샤워를 하는, 정말 상상만 해도 소리를 지르게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벌레가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아무래도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은, 게르의 천 밑으로 나방과 모기, 노린재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천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냥 그 친구들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잡아도 다시 나타나고, 잡아도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전기가 없었다. 아 물론,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충전할 일도 없지만 불도 없었다. 문을 닫으면 깜깜한 암흑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괜찮았다. 이보다 더한 생활도 해봤고, 벌레도 괜찮았고, 전기도 그다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같이 갔던 크루들은 정말 치를 떨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가혹했다.
천만다행이었던 점은 첫날의 숙소가 우리의 여행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는 점이다. 가이드 언니가 우리의 불평불만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다음부터는 숙소의 컨디션이 조금씩, 아니 아주 많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첫날의 숙소는 식당도 없었지만, 두 번째 숙소는 호텔급의 식당도 있고 저녁 식사도 나왔으며, 전기도, 온수도 매우 잘 나왔다. 정말 초호화 호텔 저리 가라였다. 저녁 식사가 프랑스 식으로 애피타이저-메인디쉬-디저트 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지.
셋째 날도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호화로운 숙소였고, 넷째 날도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하나 아쉬운 점은 마지막 날에 묵었던 테를지의 숙소였는데, 테를지는 수도 근방에 있는 곳이다 보니 환경도 매우 좋았고, 지형적 특성상 산속에 있었다. 게르도 굉장히 많았고, 숙소 한가운데서 캠프파이어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샤워실에 물도 잘 나오지 않았고, 화장실도 많이 고장이 나 있었다. 역시 너무 사람이 많으면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우리 크루는 여자 세 명, 남자 세 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3인 게르 두 개를 사용했지만, 딱 한 번 6인 게르를 사용한 날이 있었다. 3인 게르가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6인 게르를 묵게 되었는데, 역시 혼숙은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날에 가이드 언니가 3인 게르와 6인 게르 중에 고르라고 했을 때, 우리는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하다가 3인 게르를 선택했었다. 3인 게르가 편하긴 해도 6인 게르도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6인 게르에 묵어보니 3인 게르가 현명한 선택이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다 괜찮지만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어...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난 몽골이 좋았을까?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몽골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인 것 같다. 먹는 것도 시원치 않고, 자는 것도 시원치 않은 곳. 군대 혹한기 훈련 마냥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벌레들과 함께 잠들어야 하는 곳이라는 게 참, 내가 봐도 면목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 여행을 한 번쯤은 가봐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는 것들을 몽골이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몽골이 나에게 준 선물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