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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Dec 05. 2021

은하수를 덮고 잠드는 곳

몽골의 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몽골에 오기 전, J와 나는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J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주로 같이 산을 타거나 제주도 하이킹을 다녀오던, 주로 아웃도어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였다. 우리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더 큰 세계의 자연을 둘러보고 오고 싶었다. 예를 들면 북유럽의 피요르드나 오로라,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남미 마추 픽추 유적지 등등. 그렇게 고르고 고른 우리의 후보지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아이슬란드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는 미 서부, 그리고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몽골이었다.


은하수의 몽골


 우리는 그중에서도 많은 고심 끝에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몽골로 떠나기로 했다. 가깝기도 하고 경비도 더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계절적인 타이밍도 아주 잘 맞았다. 아이슬란드는 겨울, 미국은 봄가을이 성수기지만, 몽골은 여름이 성수기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J와 나는 둘 다 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워낙에 자연을 좋아하는 J는 천문 동아리만 10년을 했을 정도로 밤하늘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언제 한 번은 J를 따라서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유성우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 갈 때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던 아이였고, 언젠간 우주여행을 떠나고픈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의 밤이 오고 있다.


 그렇다. 욜링암, 바얀작, 차강 소브라가, 홍고링 엘스 등등. 우리는 더없이 많은 경험을 하고 경관을 보았지만,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밤하늘의 은하수였다. 몽골이 선물해주는 흐드러지게 핀 은하수. 천문 동아리만 십 년 차인 별 전문가이자 물리학 박사(진)인 J가 설명해주는 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곳. 세계에서 별이 잘 보이는 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 몽골은 밤이 진국인 것이다.


 천문 동아리 십 년 차 J가 이끄는 대로 최대한 날씨가 좋고, 달이 밝지 않은 시기를 골라 일정을 맞췄다. 은하수를 잘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주변이 밝으면 안 되기에 달이 차 있으면 안 됐다. 월령이라고 하는데, 달의 모양을 보고 달이 가장 밝지 않은 시기를 맞춰 가야 했다. 그리고 구름도 끼면 안 되니 날이 맑아야 했다. 그러나 기상 상황이라는 것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몽골을 가는 내내, 매일 밤마다 우리는 하늘이 맑기를 기원했다.


은하수를 덮고 잠들 수 있는 곳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매일 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검은 도화지에 무수히 흩뿌려진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몽골의 밤하늘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매일 밤 우리를 감쌌다. 사진으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었다. 그저 눈에 계속 담고, 가슴에 계속 담았다. 이 한 장면뿐이더라도 몽골 여행은 꼭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어떤 힘듦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니.


차마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 경이로움


 그러나 몽골의 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고요하고 평화롭지는 않았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어어~ 별 사진 그렇게 찍는 거 아닌데!


 하루는 잠들기 전에 밖으로 나가 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말을 거셨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사진을 잘 찍으신다고 하셨다. 우리의 사진을 보더니 이것저것 노하우를 알려주시며 자신이 한국에서 별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그게 사실이었다. 한국에 있는 몇 안 되는 천체관측소 소장님이셨던 것이다. 소장님은 별 사진 잘 찍는 법도 알려주시고, 친히 소장님의 카메라로 우리를 찍어주셨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별 소장님께 배운 대로 아이들이 찍어준 사진


막내 실종 사건


 잊지 못할 사고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아찔했던 일이다. 일단 몽골의 밤은 보드카와 함께하게 된다. 러시아와 가까운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몽골은 보드카가 발달했다. 마트에서도 다양한 보드카를 저렴하게 판매하는데, 우리 크루 아이들은 술을 나만 빼고 술을 다 좋아해서 매일 밤 술파티였다. 몽골에 있는 모든 보드카를 다 마셔보겠다는 심보였다. 별을 보며 보드카를 홀짝이면 그 얼마나 낭만이 있겠는가?


밖에서 술 드시지 마세요.. 벌레 꼬여요...


 첫날을 그렇게 게르에서 적당히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보이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홀로 정신이 말짱했는데, 밖은 매우 춥고 어두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아서 결국 나는 한 명씩 찾으러 떠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다들 여기저기 다른 크루들의 게르에서 놀고 있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했는데 딱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크루의 막내 YG였다.


몽골의 밤은 암흑과도 같다


 게르 캠프를 다 뒤져도 보이지 않자 나는 작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얘가 분명히 술에 취해 캠프를 벗어난 것 같은데 어떻게 찾지? 몽골의 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블랙홀, 암흑 그 자체다. 달빛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별을 보기 위해 일부러 달이 없는 시기에 여행을 떠났으니 달빛을 기대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곳이 또 얼마나 넓겠는가?! 자칫 잘못해서 길을 잃으면 자력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캠프 울타리를 따라서 원을 그리며 YG를 찾기 시작했다. 한 바퀴씩 조금 더 멀리 돌며 범위를 확대해갔다. 그렇게 두 바퀴쯤 돌았을까? 저 멀리 누군가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가니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YG였다. 아주 자기 집 침대에 누워 있듯이 가지런히 잠들어 있었다. 옆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욱여넣고는 들쳐 메고 게르로 향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인 것이 안에 아무도 없는데 자물쇠로 잠겨 있는 게 아닌가? 열쇠는 없고 YG는 집어넣어야겠고. 어디 영화에서 본 것 있어가지고, 다급하게 옆에 있는 빈 보드카 병으로 자물쇠를 몇 번 내리쳤다. 근데 정말로 자물쇠가 부서졌다!(아니 이렇게 쉽게 되면 안 되지! 그럼 자물쇠가 의미가 없잖아!) 그렇게 YG를 무사히 돌려보내 놓고 나서야 그 밤은 끝이 났다.


 그 사건 덕분에 아이들은 술을 조금씩 자제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보드카 파티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잠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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