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우리 in 아이슬란드
그 겨울의 우리
모든 게 그대로였다. 우리를 반기는 블루라군 온천의 광고도, 비요르크의 가사가 적힌 창문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겨울이 되면 아이슬란드의 밤은 참 길어진다.
처음 아이슬란드에 왔을 땐 일찍 해가 진 뒤 이곳의 밤을 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길고 긴 아이슬란드의 겨울밤을 잘 보내기 위해 카트 가득 맥주를 담았다.
맥주가 모자랐던 앞선 여행들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에인스 톡, 굴, 볼리 등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맥주는 물론 윈터에일까지 겨울 시즌에만 한정적으로만 구매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맥주를 카트로 열심히 날려 보냈다.
이전과 달리 많은 렌터카 회사들이 폐업하여 차량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많은 렌터카 회사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파산을 면하기 위해 차량을 팔아서 버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싼 보험료와 렌트 비용에 비해 차량의 퀄리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이번 여행의 발이 되어줄 차량은 소형에 가까운 SUV였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덕분에 차량과 보험 선택이 아주 아주 중요한데, 이 부분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륜으로도 씽씽 달리는 현지인이 아닌 이상 4륜이 가능한 SUV가 가장 안전하며, 사고 시 수리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싼 편이기 때문에 본인 면책금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는 풀 커버 보험을 드는 게 맘 편히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는 심지어 강풍에 문이 꺾이는 차량도 봤었고, 예기치 못한 겨울 도로의 불청객인 블랙아이스를 만나 도로 옆으로 떨어진 차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두 푼 아끼려다가 그 몇 배는 내야 하는 속상한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차량과 보험에 있어서는 도박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문제는 생각보다 작은 차량 크기에 캐리어가 트렁크에 다 실리지 않았다.
같이 도착한 사람들의 당당한 한국산 SUV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짐들과 한참을 실랑이하며 겨우 욱여넣어 버리고 다음 목적지인 코스트코 마트로 출발했다.
한국의 코스트코와는 다른 점이 있는 궁금하기도 했고, 특히 사악한 물가를 자랑하는 이곳에서는 그 존재가 더욱 반가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를 돌아보며, 여행 내내 마실 수 있는 물과 탄산음료를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를 했다.
가벼운 지출에 비해 큰 보상을 받은 듯 행복한 마음으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오던 우리를 출구에 서 있던 직원이 불러 세웠다.
나의 영수증을 슬쩍 가져가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내 다시 돌려주었다.
영수증에는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었다.
그의 작은 환영 선물에 이번 여행의 시작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 새삼 감동하여 뒤를 돌아보니, 그는 묵묵히 매장을 빠져나가는 손님들의 영수증을 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여행객들이 반가워서였을까?
가끔은 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상대방의 평범한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영수증을 잘 간직하고 싶어 이쁘게 접어 가방에 넣어두었다.
해가 어느덧 져버린 아이슬란드의 하늘이 괜스레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