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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Nov 21. 2022

EP7 일상의 소중함

바르샤바에서 쓰는 여덟 번째 청춘일기

2022년 10월 13일

런던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쭉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열은 안 나서 감기나 코로나는 아닌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기침이랑 콧물이 나고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그렇게 강제 자가격리가 시작됐고 며칠을 집에서 요양하고 나니 조금 몸이 괜찮아졌다. 기침이랑 콧물은 여전히 났지만 몸이 아프진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약 먹고 밥 먹고 자고만 반복하니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근처 bar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open music jam이 열리는 bar였는데 1층과 2층엔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었고 지하에선 open music jam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누구든 자기 악기만 가지고 있다면 즉흥으로 연주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들 아마추어 뮤지션들이었기에 가끔 삐걱대긴 했지만 서로 맞춰가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게 매력적이었다.

제일 좋았던 건 그 공간에 있던 모두가 뮤지션이 될 수 있다는 것. 옆에서 그냥 술 마시고 있던 사람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못 하든, 잘 하든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함께 춤추고 즐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게 좋았다.

난 언제나 '뭘 하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물론 그 성격 덕분에 얻은 것도 많지만 가끔은 그런 내 성격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많았다.


그곳에서 내가 들었던 노래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서 더 흥이 났다.

오늘 일기장의 마지막 한 줄은 이렇게 남기고 싶다.

완벽하지 않은 것도 가치가 있어, 완벽하지 않은 나도 가치가 있어.

2022년 10월 14일

오늘은 폴란드 친구 소피아와 대만 친구 엠버를 우리 집으로 초대한 날이다.


Korean barbecue '삼겹살'을 같이 먹었다. 두 친구 입에 맞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맛있게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아서 조금 힘들었지만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2022년 10월 16일

오늘은 우리 집 옆에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본인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 준 날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직접 구우신 치즈케이크와 따듯한 차가 우릴 반기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던 경험 덕분에 누굴 위해 이렇게 무언갈 정성스레 준비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깨달았기에 더욱 고마웠다.

그리고 이 날 난 내 생애 최고의 치즈케이크를 맛봤다.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 알고 보니 대단한 분이셨다. 영화 산업에서 종사하시는데 4년 전엔 영화감독 (아마도 CG팀 감독)으로 영화도 내셨다.

나도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기에 한국과 폴란드 영화 산업 얘기, 좋아하는 영화감독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폴란드 영화도 몇 작품 추천받았다. 폴란드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고 유명하다고 한다. 난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 흥미로웠고 폴란드 영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CG팀 감독으로 참여하신 그 영화도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하셨는데 내가 보고 싶다고 하니 영화 DVD도 주셨다. 정말 멋지고 나이스 한 분이시다!

그날 밤엔 룸메 친구와 함께 그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영어 제목은 'Another Day of Life',

앙골라 독립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폴란드 기자의 삶을 담은 영화다.

기자를 꿈꾸고 있어서일까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았다. 역시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라 그런지 다른 장르의 영화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 너무 좋은 영화라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봐보시길


바르샤바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소중한 내 한국인 친구들, 폴란드 친구 소피아, 대만 친구 엠버, 주인집 아주머니.. 그들은 모두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들이 쌓여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만큼 바르샤바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참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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