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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Nov 23. 2022

EP8 바르샤바에서 내가 해냄

바르샤바에서 쓰는 아홉 번째 청춘일기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감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 평화로움, 만족감.. 등등

요즘 내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사소한 성취감들이다.


2022년 10월 18일

오늘 내가 해내고 싶었던 일은

첫 번째, 수업시간 옆에 앉은 친구에게 뭐라도 말 걸어서 친해지기

두 번째,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내 생각 등등 뭐라도 말하기

이 두 가지이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한국에서 수업 듣는 것처럼 똑같이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세운 오늘의 '내가 해냄' 리스트였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이 두 가지 모두 해냈다. 사실 두 가지 모두 얼떨결에 (?) 해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잘 해낸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수업시간은 아니고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서

오전 수업에서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아이다이'라는 친구와 친해졌다.


첫 수업 시간에 내게 먼저 다가와 '너 Korea에서 왔지? 반가워. 나 한국 좋아해.' 하며 말 걸어줬던 아이라 항상 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도 내게 먼저 인사하며 다가와줬다. 블랙핑크를 좋아하고 k-drama에 관심이 많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음엔 내가 먼저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봐야지

오후 수업 가기 전

오후 수업 시간, 교수님이 '국가의 power란 뭐라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정적이 찾아왔고 맨 앞에 앉은 내게 교수님이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난 정말 당황했지만 '그래, 해낼 수 있어'하고 용기를 내 내 생각을 말했다.


‘수업시간엔 정숙'이라는 원칙이 있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오며 수업시간에 무언가를 말하는 행동 자체에 두려움이 생겼다. 이곳에서 수업시간에 활발히 자기 의견을 말하고 교수님께 질문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지만 그들처럼 될 용기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용기 내서 뭐라도 뱉어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잖아?"


그 후로 난 교수님의 다른 질문에도 대답을 했다. 아직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내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진 못 해서 아쉽긴 하지만 그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다.

바르샤바 대학교 도서관의 밤

역시 모든 일은 처음이 제일 어렵다. 처음 용기 내서 뭐라도 하면 그다음은 더 쉬워진다.

오늘 그 처음을 해낸 내게 아낌없이 칭찬해줘야지!


2022년 10월 19일

오늘은 기분 좋은 소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 날이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곳, '브런치'에서 작가가 됐다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메일을 받고는 정말 창문을 열고 "내가 해냈다!! “하고 외치고 싶었다.

바르샤바 대학교 도서관

아직은 내 이름 옆에 '작가'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직은 내가 그럴만한 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단어 옆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다.

맞아, 첫 글을 발행한 후 설렜던 그 느낌은 정말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을 항상 기억하면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런 작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읽고 써야겠다.


2022년 10월 20일

오늘은 내가 해내지 '못' 한 날이다.


런던 여행 후부터 계속 달고 살았던 콧물과 기침을 이제는 멈추고 싶어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영어가 가능한 의사가 있는 병원이 우리 학교 근처에 있어서 보험증서, 여권 등등 필요한 것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일주일 동안 달고 산 약과 휴지

오늘의 내가 해냄 리스트엔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일주일 간 날 괴롭힌 콧물과 기침과 작별하는 것'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해서 야심 차게 실패했다.


병원을 가니 글쎄 폴란드 국내 보험이 없으면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든 보험으로 가능하다, 내가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알아봤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실랑이 끝에 먼저 항복한 난 터덜터덜 병원을 걸어 나왔다.


일단, 꿩 대신 닭으로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내 증상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비염 증상과 똑같아서 약국에 가서 비염 약을 샀다.  

내 속도 모르고 아름다웠던 바르샤바 하늘

한 손엔 코 풀 휴지를 들고 한 손엔 약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내가 해내지 못 한 이 상황이 화가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바르샤바에 오고 처음으로 한국이 많이 그리워졌다.

아, 타국에서 아프면 이렇게 서럽구나..

죽 대신 스프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약국에서 산 비염 약이 잘 들어서 콧물과 기침이 훨씬 나아졌다는 것.


밤에 자기 전 생각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반만 내가 해낸 걸로 하지 뭐“


 ‘사소하다'는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해낸 성취들은 보잘것없지 않다. 내겐 충분히 보잘것 있는 것들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행복을 측정하는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어떤 행복은 소소하고 어떤 행복은 덜 소소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내가 해냄'도 사소한 어떤 것을 해냈을 때, "내가 해냄!"이라고 외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성취들을 과연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충분히 보잘것'있는' 것들을 해내고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해냈든, 그 일이 크든 작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내가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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