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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Nov 24. 2022

EP9 바르샤바가 드디어 ‘내 곳’이 되고 있나 봅니다

바르샤바에서 쓰는 열 번째 청춘일기

새로 산 비염약 덕분에 몸이 많이 괜찮아진 난 몸이 안 좋아 미뤄왔던 일을 하나씩 해 나가기로 했다.


2022년 10월 21일

미뤄뒀던 일 첫 번째, 장보기

항상 대형마트에서 장을 봤던 우린 오늘은 시장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집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크고 사람이 많았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케이크들과 빵 때문에 우린 정신을 못 차렸다. 다 너무 맛있어 보여서 보이는 건 전부 사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결국 우린 폴란드 전통 도넛 퐁츠키(내 폴란드 최애 음식이다) 하나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먹고 본격적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버섯, 토마토, 고기, 빵, 양파, 감자.. 등등 필요한 식재료를 모두 샀다. 확실히 시장이라 그런지 마트보다 싸고 싱싱한 물건들이 많았다.

사야 할 걸 다 산 우리는 시장 옆 푸드코트처럼 보이는 곳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쪽엔 식당들이 한쪽엔 치즈나 햄, 빵 심지어 꽃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원래는 이곳이 복싱 경기장이었던 건지 건물 끝 쪽에 복싱 경기 링도 있었다.

벽면 곳곳에 (아마도) 폴란드에서 유명한 복싱선수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정말 특이한 푸드코트다.

장을 다 보고 집으로 가는 길, 묘하게 한국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갈 때 느꼈던 감정이 느껴졌다.

익숙한 곳에서 오는 그 편안한 감정, 바르샤바에 오고 내가 제일 그리웠던 감정을 이젠 바르샤바에서 느끼고 있다.


2022년 10월 22일

미뤄뒀던 일 두 번째, 바르샤바 내셔널 뮤지엄 가기

오늘은 제라가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일본인 친구 두 명, 제라와 나 이렇게 네 명이서 바르샤바 내셔널 뮤지엄을 갔다.

우린 바르샤바에서 브런치로 유명한 'Manekin'이라는 곳에서 처음 만났다. 제라와 일본인 친구 두 명은 이미 알던 사이라 나만 처음 만나는 거긴 했다.

후쿠오카에서 바르샤바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온 카 나예와 미사키, 둘 다 성격이 좋은 덕분에 브런치를 먹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린 꽤 빨리 친해졌다.

확실히 아시안 친구들과는 아무래도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지 더 빨리 친해지는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내셔널 뮤지엄에 도착한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학생 할인을 받고 전시를 보러 들어갔다.

학생 할인을 받으면 내셔널 뮤지엄을 1 즈워티(한화 300원)만 주고 들어갈 수 있다. 폴란드에서 대학생으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이 학생 할인이다.

대중교통부터 콘서트, 미술관 등 문화시설까지 대부분의 시설에서 엄청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한국도 이런 학생 할인 시스템이 더 보편화된다면 대학생들이 훨씬 숨통 트고 살지 않을까.. 하는 나의 작은 바람

역시 인구의 95%가 가톨릭을 믿는 국가라 그런지 종교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확실히 유럽은 역사와 문화 등 모든 방면에 가톨릭이 꽤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내 취향 in 바르샤바 내셔널 뮤지엄

점점 작품을 볼 때 ‘취향’이라는 게 생기는 걸 느낀다. 작품을 보고 내 취향을 알아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 즐겁다.

이제까지 살면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봤다. 아마도 중학생 때 아이돌을 좋아했던 기억이 마지막인 것 같다.


그때를 끝으로 지금까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할 때 느끼는 행복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다. 너무 반가운 일이다.

집에 와서 잠들기 전 메모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좋아하는 걸 좀 더 열심히 좋아해 보자



2022년 10월 23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랜만에 콧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2주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콧물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는데.. 드디어 지긋지긋한 콧물과 기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몸 상태도 좋다 못해 돌도 씹어먹을 듯 쌩쌩했다.

그래서 미뤄뒀던 일 세 번째, 러닝을 시작했다.

2주 동안 운동을 못 해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달리니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미뤄뒀던 일 네 번째, 대청소를 했다.

미뤄뒀던 빨래를 하고 방 곳곳을 쓸고 닦았다.

거실, 부엌, 화장실까지 모두 청소를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집과 함께 몸과 마음 모든 게 한결 깨끗해져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바르샤바에 온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한 달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난 많이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내 곳'이 된 바르샤바에서 보낼 다가올 한 달도 기대가 된다.

그 한 달은 지난 한 달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날 성장시킬 거라는 확신도 든다.


새로운 시작의 기로에 선 오늘, 몸과 마음 그리고 내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고 나니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됐다.


내일의 태양은 오늘보다 더 화창하기를 바라며 오늘의 태양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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