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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Oct 27. 2022

EP6 폴란드에서 개강은 또 처음이라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곱 번째 청춘일기

2022년 10월 4일 오전 10시 30분


드디어 처음으로 학교에 '수업' 들으러 가는 날

첫 수업에 늦고 싶지는 않았기에 조금은 바삐 움직였던 아침이었다.


내 첫 수업 강의실은 학교 정문 앞에 있는 한 건물에 있었다.

지금까지 이 앞을 지나가면서 한 번도 여기가 학교 건물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정치외교학과 (내가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소속되어 있는 학과이다.) 건물인 것 같다.


확실히 개강날이라 그런지 건물 앞은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 앞에 다다르니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걸로 보이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가 없었던 난 조용히 고독을 씹었다. 외딴섬같이 서있던 내가 조금 외로워지려는 찰나, 교수님이 강의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강의실에 쭈뼛쭈뼛 들어가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난 강의실에 앉을 때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인데 첫째 줄은 부담스러워 항상 두 번째 줄에 앉곤 한다.

‘Political comics and graphic novels'

바르샤바 대학교에서의 첫 수업이다.


'comics'와 'graphic novels'라는 단어만 보고 재밌겠다 싶어 듣기로 결정한 강의다. 한국에선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수업이라 흥미롭고 재밌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 놀랐던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수업이 정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으레 생각한 유럽 대학교의 수업시간은 토론과 질문이 오가는, 한국 대학 수업 방식과 정반대 되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한국에서 처럼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필기하고 질문 시간엔 어김없이 침묵이 찾아오는 그런 수업이었다.


유럽 대학 수업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던 내 맘에 안도와 함께 실망이 찾아왔다.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만나 학교 old library 앞 벤치에서 점심을 먹었다. 친구는 집에서 샌드위치를 싸왔고 난 집에서 주먹밥이 되고자 했던 볶음밥을 싸왔다.

바르샤바답지 않게 따듯한 햇살과 함께 먹으니 조금은 차가운 밥알도 나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old library 안에 위치한 Interantional relation office에 학생증을 찾으러 갔다.

학생증을 받고 나니 이제 진짜 바르샤바 대학교 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반 년동안 폴란드에서 서울대를 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달까.


학생증도 받았겠다 우리는 학교 도서관에 가보기로 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마침 저번에 늦어서 듣지 못했던 libarary tour를 하고 있어서 나와 친구는 은근슬쩍 끼여 도서관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투어가 끝나고 도서관 시스템에 학생증 등록까지 마친 우리는 당당히 학생증을 찍고 도서관 안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왔으면 응당 공부나 독서를 해야 하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수업과 도서관 투어로 지쳐가고 있던 난 도서관 중간에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고 정신 차렸을 땐 내 몸은 이미 그곳에 누워있었다.


조금 눈만 붙일까 했는데 또 정신 차려보니 오후 6시가 다 되어갔다. 거기서 한 시간 정도를 잔 것이다. (나도 참.. 대단하다.) 6시 30분에 수업이 있는 난 얼른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을 나오니 조금은 쌀쌀한 바람과 핑크빛 노을이 날 반겨주었다. 도서관에 처음 가자마자 내 집처럼 잠을 자버리다니 학교와 너무 빨리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좋다.

이번 수업의 강의실은 첫 수업을 들었던 건물 바로 옆 옆에 있는 건물에 있었는데 이 건물 또한 정치외교학과 건물인 듯했다.


'Introduction to world politics'

오늘의 두 번째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이다.


이 수업은 바로 내가 생각한 유럽 대학 수업 그 자체였다. 교수님이 던지는 질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필요하면 토론도 한다. 교수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주저 없이 반문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주저 없이 질문한다.

처음 경험해보는 수업에 그리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압도당한 나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내내 조금 벙쪄있었다. 첫 수업에서 느꼈던 안도감은 눈 씻기듯 없어졌고 내가 이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았다.


2022년 10월 5일 오전 10시 50분


오늘도 수업이 2개가 있는 난 바삐 집을 나왔다. 그래도 오늘 있는 수업 강의실이 어제 가봤던 건물에 있어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International migration'

오늘의 첫 번째 수업이다.


'이민'이라는 조금은 생소하고 지엽적인 주제의 강의지만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수업이었다. 학생들도 정말 적극적이었는데 어제 수업으로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오히려 그렇게 활력 넘치는 수업이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수업이 연달아 있는 날이어서 첫 번째 수업이 끝나고 바로 두 번째 수업을 들으러 갔다.


두 번째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들어가는데 첫 번째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한 친구가 그 강의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얼른 알은체를 하고 인사를 했다. 대만에서 온 엠버라는 친구인데 알고 보니 나와 수요일 수업 시간표가 완전히 똑같았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생겨서 너무 행복했다. 안 그런 척했지만 혼강이 조금은 외로웠나 보다.

'Asymmetric threats'

오늘의 두 번째 수업이자 이번 주 마지막 수업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5분 후, 난 조용히 노트북 음성녹음기를 켰다. 교수님 말이 너무 빨라서 교수님이 하는 말의 반은 내 귀를 그냥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도 생소해서 내가 듣는 4개 강의 중에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Final test와 학점이 심히 걱정된다. 이 수업은 정말 미리미리 복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 이번 주에 들었던 수업들을 반추하고 수업 별로 내가 해야 할 일들, 공부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봤다.


그러고 나니 막막한 기분은 사라지고 그곳에 잘 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 그러니까 폴란드에서 전 세계에 온 다양한 학생들과 같이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경험을 하는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 소중한 시간을 그저 주저하고 두려워하면서 보내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시간들을 좀 더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그래 그렇게 충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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