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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Oct 25. 2022

EP5 함께라서 행복해요

바르샤바에서 쓰는 여섯 번째 청춘일기

2022년 9월 28일 오전 11시 54분

어제부터 한식이 유난히 그리워진 나는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며칠 전 asian market에서 산 신라면을 집었다.

끓일 때부터 매콤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하더니 라면을 다 끓이고 한 입 먹자마자 난 “아우, 이 맛이야 “를 육성으로 외칠 뻔했다.

이제부터 한식이 너무 그리울 때마다 신라면 처방을 해야겠다.

디저트는 삶은 계란

폴란드 계란은 꽤 맛있다. 원래 계란 노른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기선 없어서 못 먹는다.

오늘은 바르샤바에 와서 처음으로 날씨가 흐린 날이었다. 하지만 Roller disco라는 행사가 있었기에 오늘도 바쁘게 집을 나왔다.

Roller disco가 열리는 롤러장은 우리 집에서 꽤 멀었다. 대중교통 타고 1시간 정도 걸렸다.

버스에 내렸는데 내가 알던 바르샤바와는 너무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바르샤바에 와서 이렇게 외곽 쪽으로 나가본 적은 처음이라 조금 무섭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겨우 롤러장을 찾아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Roller disco가 롤러를 타면서 친구를 사귀는 행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롤러만 열심히 타는 행사인 것 같았다.

우린 번지수를 잘 못 찾아온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그냥 centrum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열심히 쇼핑을 하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제2회 고기 파티를 열기로 했고 근처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비가 와서 우린 택시를 탔다. 페루에서 온 택시 기사님이 우리에게 페루 음악을 소개해주는데 진심이셔서 마치 작은 클럽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노래 꼭 들어보라며 추천해주셨는데 아직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을 만큼 맘에 들었다.

한국에선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그냥 일상인데 여기 바르샤바에선 특별히 행복한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혼자 삼겹살을 먹는다면 이 시간이, 이 음식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음식을 먹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소중하다.

마트에서 순대처럼 보이는 음식도 샀는데 먹어보니 진짜 피순대 맛이 났다. 평소 순대를 좋아하지만 이 폴란드 순대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폴란드 맥주는 완전히 내 스타일이다. 특히 이 꿀맥주가 참 요물이다. 달달하고 고소하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계속 먹게 된다.

폴란드 아이스크림도 내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초코가 맛있어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이 다 맛있다.


그렇게 야무지게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제2회 바르샤바 고기 파티를 마무리했다.     


2022년 9월 29일 오후 2시 23분

바르샤바에 와서 처음으로 아무런 계획도 없는 날,

나와 친구는 집에서 늦게 까지 쉬다가 Galaria mokotow라는 근처 대형 쇼핑몰에 장을 보러 갔다.

우린 five o'clock이라는 티와 커피를 파는 가게에 이끌려 들어갔다. 가게가 너무 이뻐서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예쁜 가게에서 뭐라도 사고 싶었던 우린 차와 커피를 하나씩 샀다.

우린 지나가면서 이쁜 가게가 보이면 무작정 핸드폰을 들었다. 사진을 찍으며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가게 주인이 보면 쟤네는 이걸 왜 찍나 싶겠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뭐 어떡해. 이쁜데"라고 답했다.


맞아, 뭐 어떡해. 이쁜데!

지나가다가 한국 화장품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K-화장품 폴란드에서도 열일하는구나, 멋져.

김치도 발견했다.

K-푸드도 열일하는구나, 멋져 멋져.


바르샤바에 있으면서 나도 몰랐던 애국심을 발견하게 됐다. 한국에 관련된 어떤 것이든 보이면 괜히 반갑고 뿌듯하고 그렇다.  나만 이런 걸까

쇼핑하다 배가 고파서 친구와 샐러드를 사 먹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이렇게 생긴 요거트도 사 먹었는데 꾸덕한 요거트와 망고, 초코무스가 절묘하게 어울린 완벽한 요거트였다.


친구와 이걸 먹으면서 바르샤바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봤다. 난 바르샤바가 생각보다 깨끗하고 안전해서 좋다고 했고 친구는 바르샤바의 음식이 맛있고 물가가 싸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르샤바 칭찬을 하던 와중에 친구가 "폴란드에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제작진들이 우리 진짜 섭외하고 싶겠다."라고 했다. 진짜 폴란드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바르샤바를 이렇게 사랑하는 한국인 2명을 하루빨리 섭외하는 게 좋겠다.

장을 다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우린 과일가게에서 라즈베리와 애플망고를 샀다.


어둠이 내려앉아 동그란 달이 떠있는 신호등 앞에서 "우리 집에 가서 커피랑 차랑 라즈베리랑 애플망고 먹자!"하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졌다.


혼자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기에 내 룸메 친구가 참 고맙고 소중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처음인데 이렇게 잘 맞는 룸메를 만나다니, 정말 행운이다!

 '알레그로'라는 폴란드의 쿠팡 같은 어플에서 시킨 내 전기장판까지 야무지게 찾고 우린 얼른 집으로 향했다.


몸도 마음도 따듯해지는 밤이었다.


2022년 9월 30일 오전 10시 20분


orientation week의 마지막 날

우린 아침부터 학교로 가 메인 캠퍼스 투어를 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캠퍼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여긴 새로운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 도서관인 old library이다. 지금은 강의실로 쓰이고 있다.

old library 앞에 있는 건물이다.

쇼팽이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old library 앞에 있는 또 다른 건물

특별한 행사를 할 때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건물 안 곳곳이 참 아름답다.

며칠 뒤에 이곳에서 입학식을 한다고 한다.

그런 특별한 행사 날엔 교수님들이 이런 옷을 입는 게 전통이라고 하는데 이 옷 꽤나 따듯해 보인다.

바르샤바 대학교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메인 캠퍼스 투어가 마무리됐다.

우린 점심으로 학식을 먹어볼까 해서 학교 식당으로 향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10월 3일 개강날 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학교 근처 케밥 맛집으로 발을 돌렸다.

내 첫 케밥이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바르샤바 대학교 근처 'kebab king'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시길.


밥을 다 먹고 2시에 있는 도서관 투어까지 시간이 남은 우리는 가보고 싶었던 초콜릿 카페로 향했다.

'베델'이라는 곳인데 폴란드에서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이자 초콜릿 카페이다. 바르샤바에 오면 이 '베델'카페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이트 초콜릿을 좋아하는 난 화이트 핫초코를 시켰다. 맛은 말해 뭐해 환상이었다. 폴란드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면 이 초콜릿이 제일 참기 힘들 것 같다.

이 카페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바르샤바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왔다'는 특별한 경험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 보니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의 과거와 현재, 미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2시가 돼버렸다.


우린 얼른 카페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서관을 도착했을 땐 이미 도서관 투어를 하는 학생들은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래서 그냥 우리끼리 도서관 투어를 하기로 했다. 아직 학생증이 없는 우린 도서관을 들어가지 못하기에 바르샤바 대학교 도서관의 명물 ‘옥상 정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면 옥상 정원의 문을 잠시 닫는다는데 그전에 와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옥상 정원에서 보는 바르샤바는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더욱 행복했다.


나와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바르샤바에서 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바르샤바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인 두 한국인 친구와 같이 있으면 그런 느낌이 조금은 옅어진다. 아무에게도 편하게 기댈 수 없는 이곳에서 그 둘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내게 힘이 된다.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버스 탈 땐 잠이 안 오는데 함께 있으면 버스에서 그렇게 잠이 온다고.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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