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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Oct 24. 2022

EP4 스물세 살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바르샤바에서 쓰는 다섯 번째 청춘일기

2022년 9월 27일 오전 9시 11분

바르샤바에 도착한 지 5일째

벌써부터 한식이 그립기 시작했다.

나와 룸메 친구는 이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같이 된장찌개를 끓여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폴란드 마트에서 산 양파와 버섯을 넣어 끓이니 꽤나 그럴듯한 된장찌개가 완성됐다.

된장찌개와 흰 밥을 한입 먹자마자 이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 지 5일 만에 한식이 그리워 된장찌개를 끓여 먹다니 남은 폴란드 생활이 참 걱정된다.


orientation week 두 번째 날,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바르샤바 투어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교 옆 예쁜 가게가 있어(아마도 서점인 듯하다.) 친구와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은 학교 주변 모든 곳에 기분 좋은 낯섦을 느낀다.

학교 정문에 다다르니 가이드 분과 바르샤바 투어를 신청한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각자 이러한 굉장히 관광객스러운 물건을 받았는데 여기에 달린 이어폰을 끼면 가이드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이드 분을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은 ‘색슨 가든’이었다.  

그곳에 있는 무명용사 묘 앞에서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들었다. 폴란드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무덤이라고 하는데 묘 양 옆엔 군인 2명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짧게 폴란드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은 우리는 색슨 공원 앞 한 관공서 건물 앞에서 다시 한번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10분 정도 걸어 올드 타운으로 향했다.

올드 타운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가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건물 양식은 오래되었지만 건물들이 다 깨끗하고 현대적이라는 게 보였다.

이 종 또한 깨어졌다가 다시 붙인 흔적이 보이는데 이 또한 전쟁 당시 깨어진 잔해들을 모아 복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이드 분의 설명을 따라 올드타운을 걸으니 이곳이 좀 더 다르게 느껴졌다.

폴란드의 전쟁과 독립의 역사를 알고 나니 폴란드와 우리나라가 꽤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걸 느끼게 해 준 바르샤바 투어는 올드타운 구시가 광장에서 끝이 났다.


바르샤바 투어를 하며 꽤나 걸었던 우리는 허기가 져 다시 바르샤바 왕궁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근처 맥도널드에서 간단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fast freinding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centrum 쪽에 위치한 한 bar로 향했다.

어김없이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어제의 경험으로 조금의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양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ROKA 티셔츠를 입은 폴란드 친구도 만났는데 이 옷이 너무 반가웠고 그걸 폴란드 사람이 입고 있다는 게 웃겼다.


이 행사에선 특히 asian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확실히 유럽 친구들 보단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관심이 많아서일까 친해지는 게 더 쉽고 빨랐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서 인지 대화도 잘 통했다.


그렇게 한참을 재밌게 놀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는 피자를 먹으러 갔다.

피자를 먹는데 난 또 하나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유럽 친구들이 1인 1 피자를 하는 것이다.


나와 친구는 도저히 1인 1 피자는 못할 것 같아서 같이 먹기로 했는데 우린 그것마저 남겼다. 우리가 피자를 남긴 걸 보고 유럽 친구들이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what?”이라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걔네한텐 그게 문화충격이었겠지?


피자가 잘려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소소하게 충격이었다. 한국의 피자는 대부분 잘려서 나오기에 바로 먹으면 되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직접 잘라야 해서 좀 귀찮다.


나와 친구가 열심히 피자를 자르고 있는데 우리가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모습을 보고 제스퍼(city game을 하면서 친해진 벨기에에서 온 친구다.)가 되게 신기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잡는다며 우리에게 포크와 나이프 잡는 법을 알려줬다. 그 후로 제스퍼가 알려준 방식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잡으려 노력해봤지만 불편해서 그냥 내 스타일대로 잡고 있다. 하하

 

그렇게 내게 다양한 충격을 안겨준 피자가게에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난 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참 바쁘게 움직였던 난 빨리 집으로 들어가 씻고 벌러덩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다.


하지만 웬걸 열쇠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룸메 없이 문을 여는 건 처음이라 걱정을 하긴 했지만 진짜 내가 집을 코 앞에 두고 열쇠 때문에 집을 못 들어갈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열쇠는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유럽에선 아직 열쇠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바르샤바에 와서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정말 이 열쇠 문화를 꼽겠다. 심지어 한국 열쇠랑 달라서 2번 돌려야 문이 열리는데 글로 쓰면 쉬워 보이지만 처음엔 꽤 어렵다.

한 10분 동안 열쇠와 실랑이를 한 끝에 문을 연 나는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안도감에 정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마침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던 나는 이 모든 걸 친구에게 생중계했고 이런 웃픈 사진을 건지게 되었다.


Photo by soomin

바르샤바에 오고 '참 내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구나' 하는 걸 깨닫는 순간이 많다.


근데 그게 또 마냥 나쁘진 않다.

처음 해보는 게 많아 모든 게 서툴긴 하지만 모르는 걸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로운 걸 알아가면서 하루하루 내가 성장해간다는 게 느껴져 한편으론 내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배우 이하늬가 자신의 브이로그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 나이가 40살인데 이렇게 모르는 일, 처음 해보는 일이 많다니. 너무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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