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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Oct 23. 2022

EP3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건 처음이라

바르샤바에서 쓰는 네 번째 청춘일기

2022년 9월 26일 오후 12시

내가 한 학기 동안 다니게 될 바르샤바 대학교는 개강 전 한 주를 Orientation week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연다.


Orientation week의 첫 날인 오늘, 학교에서 welcome meeting을 열었다.


정문엔 폴란드의 상징인 독수리와 ‘Uniwersytet’라는 문구(폴란드어로 대학이라는 뜻)가 가장 먼저 보였다. 유난히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파랗고 깨끗한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학교와의 첫 만남에 조금 들뜨고 설렌 마음을 안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안은 마치 롯데월드 같았다. 모든 건물들이 놀이동산에 있는 건물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앞으로 내가 수업을 듣고 공부할 공간이 이렇게 이쁘다니. 얼른 저 안에서 수업을 듣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했다.

학교를 조금 둘러보다가 welcome meeting이 열리는 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강당 안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학교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은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학생들은 조금은 낯선 이 공간을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사진을 찍으며 어색함을 풀어가던 그때,

본격적인 welcome meeting 행사가 시작했다.


행사의 첫 시작은 단연 자기소개, 하지만 교환학생들이 워낙 많은 만큼 각자 소개를 하진 못 했고 대신 나라 별로 일어나 서로에게 얼굴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조금 당황스럽게도 ‘Korea’가 첫 번째로 불렸다.

당황한 우리 셋은 굉장히 쭈뼛거리면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다른 친구들은 우리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반갑게 반겨주어 좋았다.


한국에서 좀 더 많은 학생이 왔을 줄 알았는데 한국 학생은 우리 셋뿐이어서 한 번 더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우리 셋만이 한국인이라니 뭔가 내 옆에 있는 두 명의 한국인 친구가 좀 더 소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환영하였고 그 후 10분 정도 앞뒤에 앉은 친구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난 뒤에 앉은 프랑스에서 온 토마스라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토마스가 내 고향 ‘대구’를 알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구를 아는 프랑스 친구와 이야기하는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을 했다.

그 후, 학생증을 신청하는 방법, 학교 시설 소개 등등 학교를 다니며 필요한 정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orientation week 행사인 welcome meeting이 끝났다.


기억에 남는 건 학교에 있는 특이한 심리상담소인데 바로 날씨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는 교환학생들을 위한 심리상담소다. 겨울엔 4시에 해가 지는 폴란드에선 그런 날씨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고 심하면 우울증까지 걸리는 교환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무료 심리상담소라고 하는데 부디 내가 그곳에 가는 일이 없길 바란다.


Welcome meeting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룸메 친구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여긴 빵과 햄, 치즈, 토마토가 맛있어서 그런지 특별한 소스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고급 브런치 카페에서 먹는 샌드위치 맛이 난다.

원래는 샌드위치를 즐기지 않은 나였는데 이런 맛이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디저트(?)로 먹은 감자 과자

토마토케첩을 찍은 감자튀김 맛이 나는데 감자튀김을 사랑하는 나에겐 가히 혁명적인 과자다.


밥을 먹고 집에서 좀 쉬다가 우리는 바르샤바 city game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왔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우리는 그냥 비를 맞으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폴란드 시내 centrum에 있는 문화 과학 궁전 앞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바르샤바 city game을 주최하는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임의로 5명씩 조를 나눠주었다.


나는 한국인 친구 수민이, 제스퍼라는 벨기에 친구, 빅토리아와 베로니카라는 독일에서 온 두 친구와 조가 되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city game을 시작했다.

우리 조에 빅토리아라는 친구가 정말 승부욕이 강했는데 폴란드어도 할 줄 아는 똑똑한 친구여서 우리는 빅토리아가 가는 대로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랑 수민이는 city game 미션을 하기 위해 가는 모든 곳이 이뻐서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정말 게임에만 집중했다.

우린 “여기 우리한테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 “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제스퍼에게 너희는 여기가 그냥 normal view야? 왜 사진을 안 찍어?라고 물어보니 그냥 normal view라며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확실히 유럽 아이들에겐 여기가 이국적이게 느껴지지 않나 보다. culture shock..!

어떤 동상 앞에서 뭐라고 적은 지 모른 이 종이를 들고 사진도 찍고

폴란드 전통 도넛도 사 먹었다.

근데 이 도넛 꽤나 맛있었다.

밝을 때 시작한 바르샤바 city game을 밤이 될 때까지 계속했다.

열정 가득한 친구들을 따라 걷느라 조금 힘들긴 했지만 걸으면서 한국, 독일, 벨기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바르샤바 city game이 다 끝나고 게임에 참여한 모두가 학교 옆 bar에 모였다. 조그만 bar에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조금 정신없긴 했지만 나름 재밌었다.

난 빅토리아가 추천한 ‘피나콜라다’라는 칵테일을 먹었는데 우유 맛이 나는 달달한 술이어서 초등학생 입맛인 나에게 딱 맞았다.

열정 가득한 조원들 덕분에 우리 조가 바르샤바 city game에서 1등을 했다. 우승 상품으로 폴란드에서 유명한 초콜릿과 술도 선물 받았다.


조별과제에서 버스 탄 기분이 이런 걸까, 조금 미안하지만 기분은 좋다. 오예!


처음으로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같이 city game도 하고 bar에서 대화도 하면서 처음 겪어 보는 감정을 많이 느꼈다.


솔직히 처음엔 내가 영어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지 외국인 친구들 무리 안에서 소외감도 조금 느꼈다. 어떻게 다가가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두려움과 어색함도 있었다. 만나는 모든 친구와 친해져야 하는 강박도 있었고 좀 더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나와 맞는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는 거지 내가 외국인 친구라고 해서 너무 다르게 대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처럼 나와 맞는 사람과 친해지고 그들과 소중한 인연을 쌓으면 되는 일인데 처음이라 그런지 내가 치는 장단에 모두가 춤을 추길 바랬나 보다.

돌아보면 내 느린 영어를 기다려주고 유창하진 않지만 진심을 담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유독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치는 장단이 맘에 들어 기꺼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소중한 사람들


그런 소중한 인연이 있었는데 왜 난 내 장단에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을 신경 쓰며 나를 자책하고 작게 만들었을까. 바보 같은 일이다.     

바르샤바에 생활하면서 앞으로 난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모두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내 장단에 춤추고 상대방의 장단에 내가 춤출 수 있다면 기꺼이 친해지자.

그리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

인연의 가치는 양으로 매길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장단에 춤춘다면 기꺼이 밤새도록 같이 춤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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