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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Oct 21. 2022

EP1 친해지는 중입니다

바르샤바에서 쓰는 두 번째 청춘일기

2022년 9월 24일 오전 9시 28분

발 끝에서 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저절로 눈이 떠진 바르샤바에서의 첫 번째 아침

유난히 짹짹 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창문 밖 세상엔 새삼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좋았다.


난 간단히 나갈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어제 못 샀던 이불과 전기장판을 사러 이케아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케아에 가기 전, 룸메이트 친구가 가고 싶어 하는 antique market도 들리기로 했다. 바르샤바에 Wola라는 곳에서 주말에만 이 antique market이 열린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 주변엔 나뭇잎이 밑으로 자라서 마치 거대한 초록색 가발같이 보이는 나무들이 많은데 이 나무가 뭔지 정말 궁금하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길)

트램을 타러 가는 길

이렇게 야채와 과일을 내놓고 파는 조그마한 가게를 발견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너무 유럽스럽고(?) 예뻐 보였다. 그래서 바로 카메라를 켰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데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폴란드어로 나에게 뭐라 소리쳤다. 처음엔 사진 찍지 말라고 화내는 건가 했는데 또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 농담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황하고 놀란 나는 냅다 도망쳐버렸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트램을 타고 antique market으로 향했다. 트램에서 내리자 마치 동묘시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리에 자리 잡은 상인들이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열심히 팔고 있었다.

배지, 메달, 군인 모자, 엽서, 그릇, 시계 등등 다양한 골동품들이 있었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골동품을 사서 모으는 취미는 없지만 폴란드인들의 골동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습작처럼 보이는 그림들과 기타 그리고 군복이 내 구매욕구를 솟구치게 만들었다.

antique market에서 한바탕 구경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이케아로 향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토요일 낮임에도 조용한 거리엔 그림 같은 집들과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어렸을 때 집을 그리면 으레 빨간 세모 지붕을 가진 네모난 집들을 그리곤 했다. 바르샤바에는 그런 집들이 그림이 아닌 거리에 있다. 내가 그림 속에 온 건지 이곳이 그냥 그림인 건지 호접지몽이 따로 없다.


조용한 거리를 지나자 자동차와 사람이 가득한 도로가 나왔다.

바르샤바는 참 반전이 많은 도시다.


버스를 타고 이케아로 향했다.

이케아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니 이케아 옆에 Auchan이라는 폴란드 대형 슈퍼마켓이 있었다. 마침 저녁거리도 사야 해서 Auchan을 갔다가 이케아를 가기로 결정했다.

Auchan에 들어가자 입구 바로 옆에 Asian market이 있었다. 거기엔 신라면, 짜파게티, 비비고 만두 등 한국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난 한국에서 라면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샀다. 가격은 둘이 합해서 4500원 정도 나왔으니 라면 한 봉지에 2250원 정도 하는 셈이다. 꽤나 비싸다.


소중한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가방 속에 넣고 본격적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원래 이불과 전기장판을 이케아에서 사려고 했는데 Auchan에 꽤나 좋은 물건들이 많길래 그냥 다 Auchan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괜찮은 가격의 이불을 사고 전기장판을 찾아다녔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전기장판은 그냥 인터넷으로 시키기로 했다.

친구와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둘러보았다. 빵과 치즈와 햄이 정말 많았다. 아마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 중 80%가 그 세 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셋이 정말 저렴하다. 특히 빵이 정말 싼데 하나에 300~600원 정도 한다.


우리는 빵 몇 개와 치즈, 햄, 그리고 오늘 저녁으로 먹을 삼겹살과 소고기를 샀다. 폴란드는 고기가 정말 싸다. 삼겹살 500g에 8000원 정도 한다.


열심히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산 소중한 물건들을 계산하고 밖으로 향했다. 장을 보다가 출출해진 우리는 근처 벤치에 앉아 방금 산 빵을 먹었다.

팬케이크 와플 같은 빵이다. 달고 맛있었다.

빵을 다 먹고 Auchan을 나와 택시를 불렀다. 하늘이 참 높고 맑았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와 우린 고기 파티를 준비했다. 삼겹살과 소고기와 함께 먹을 김치, 쌈장, 명이나물을 꺼냈다. 비록, 깻잎과 상추는 없지만 대신 집에 있던 샐러드로 헛헛한 마음을 채웠다.

삼겹살과 명이나물을 먹자마자 느껴지는 고국의 맛이 날 감동시켰다. 나와 친구는 빠른 시일 내에 두 번째 고기 파티를 열기로 다짐하면서 제1회 고기 파티의 막을 내렸다.


고기를 다 먹고 오늘 사온 이불을 침대에 깔았다. 그러자 낯설게 느껴졌던 침대가 제법 따듯하고 포근해졌다. 이제야 내 침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냉장고, 침대, 책상, 화장실..


어젠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던 곳에 내 손길이 닿은 물건들이 채워지면서 점점 내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르샤바와 바르샤바에 있는 내 새로운 보금자리와 조금씩 친해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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