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6
내가 기억하는 파리는 극과 극의 도시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데 한 끗 차이로 미가 추로 변하고 추가 미로 바뀌는 곳이었다.
나와 친구가 머무는 숙소는 몽마르트르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18구에 위치한 곳이었다.
루브르나 에펠탑, 센강에선 좀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라 치안이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가기까지 그 악명 높다던 파리 지하철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럽진(?) 않았고
불친절하다던 파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와닿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품는 그 파리에 대한 로망이 떨어져 나갔다. 시비가 붙은 건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싸우고 있는 4층 집 할머니와 3층 집 할아버지, 거리에서 나는 기분 나쁜 냄새, 호텔로 가는 골목 바닥에 드러누워있는 노숙자들까지 내 로망에 찬물을 끼얹는 풍경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조금 충격을 받은 상태로 체크인을 하고 느지막이 에펠탑을 보기 위해 나섰다.
그 기분 나쁜 골목을 지나 버스를 타고 에펠탑 근처로 향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리가 깨끗해지더니 버스에서 내리자 내가 생각했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 파리가 나왔다.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 예쁜 레스토랑, 빵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까지 내가 알던 파리였다.
어두운 밤 홀로 노랗게 빛나는 에펠탑과 센강은 로맨틱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다음 날, 숙소 근처 빈티지 마켓에 갔다. 긴 노점상들을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노점상들이 있는 곳은 시끄러웠고 가게 주인들은 지나가는 우리에게 인종차별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큰 문 하나가 나왔고 그걸 열고 들어가니 그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문 하나로 시공간을 초월한 기분이었다.
그곳에 있는 빈티지 옷집 주인 할머니는 모자를 고르고 있는 내게 이것저것 추천을 해줬고 밖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언어로 내게 예쁘다고 말해주셨다. 둘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전자는 분명한 모욕감을, 후자는 묘한 따듯함을 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판테온도 보고 소르본 대학교도 보고, 노트르담 성당도 봤다.
아름다웠다. 내가 불과 30분 전에 있었던 그곳과 이곳이 똑같은 파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파리가 가진 이 극과 극의 온도차가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다.
루브르에서 실제로 본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또 그 모든 사람이 사진을 찍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나도 그 사이에서 한 장 겨우 찍고 뭘 느낄 새도 없이 군중에서 빠져나왔다. 남은 거라곤 갤러리에 남은 공허한 사진뿐이다.
정말 보고 싶었던 프랑스혁명 그림을 봤다.
전 세계에 평등의 씨앗을 퍼뜨린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 파리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하기도 하다.
파리에서의 최고의 기억은 오랑주리와 가르니에 이 두 글자로 정리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은 압도적이었다.
책, 영상, 엽서.. 수많은 곳에서 모네의 수련을 봤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련은 고요하고 깨끗하다.
나도 몇 장 찍어봤지만 조그만 스크린 안에 담긴 수련으론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없을 듯하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정말 화려하다. 샹들리에와 금빛 장식들, 디테일한 천장화와 공간감이 정말 말 그대로 눈이 부시다.
특히, 공연장에서 본 샤갈의 천장화가 정말 좋았다.
이날 발레 공연을 봤는데 사람의 몸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게 신기했다.
파리는 아름답다가 순식간에 추해지기도 하고 또 그러다 한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날 놀라게 했다.
그게 지극히 인간적이게 느껴지다가도 기시감이 든다.
하여튼 참 내게 파리는 묘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