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육룡이 나르샤>
추석 연휴가 성큼 다가왔다. 연휴에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 중 하나가 웰메이드 드라마 정주행이 아닐까? 정주행할 때마다 재밌는 나의 인생 드라마를 추천하려고 한다. 이 드라마를 굳이 추석 연휴에 봐야 하는 이유는 주말로는 정주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무려 50부작이기 때문이다... ㅎㅎㅎㅎㅎ
요즘 어떤 드라마가 50부작이나 하냐고??? 바로....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육룡이 나르샤>다. 사극을 좋아하고 무협을 좋아하고 액션을 좋아한다면??? 50부작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젭알 봐요....넘 재밌다고요..... 긴 만큼 서사가 촘촘해서 더 재미있다고요....ㅎㅎㅎ
'잔트가르'를 외치는 어린 방원이
흔한 여말선초 배경으로 육룡이 조선를 건국의 주역이다. 당연히 이성계와 이방원이 나오는데, 그간 나온 사극에서와 다르게 이방원의 서사를 유년기부터 쌓아나간다. (이 빌드업이 중요하다) 사투리를 쓰며 아버지 이성계를 '잔트가르(최강의 사내)'로 존경하는 이방원은 개경에서 정도전을 만난다. 권문세족에게 굴복한 아버지와 다르게 끝까지 싸워 이긴 정도전에게 반하는 방원은 정도전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 성균관에 간다.
이성계의 자녀 중 유일하게 성균관에 들어가 문관의 길을 걷는 이방원의 실제 행적과 맞물린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정도전을 스승으로 따르는 이방원의 모습에 개연성을 더한다. 성균관에서 불의에 굴복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들을 직접 징벌하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철혈군주 새싹 같아 보이면서도....
정도전을 배신한 스승 홍인방에게 "정의는 오로지 악을 방벌함으로써 정의롭습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은 개혁 의지를 불태우는 열혈 청년으로 보인다. (남다름 배우 연기가 발군이다) 이랬던 열혈 청년이... 권력의 화신이 되어가는 과정과 서사가 찐이다.... 권력의 화신인 자신과 같은 부류라며 계속 꼬드기는 홍인방과 대적하면서 주고받는 티키타카를 보다 보면 젊은 시절 정의를 외치다가 변모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밉지 않은 캐릭터와 몰입 만땅 서사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퓨전 사극이라 가상 인물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개성으로는 1등인 캐릭터가 바로 길태미다. 삼한 제일검이면서 꾸밈을 좋아하고 홍인방과 사돈이 된 후에는 나름의 의리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간신배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캐릭터다. 자신의 삶 마지막에 칼로써 이방지와 승부를 보는 장면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려한 액션, 한국판 무협이야
드라마 제작 당시부터 무협을 염두해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액션이 화려하다. 도화전 장면과 척사광 등장 후 이방지와의 대결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예리 배우가 맡은 척사광은 무려 칼로 가마를 가른다. 도화전 액션씬은 난전이라 보는 내내 쫄깃하다. 내 기준 어설픈 액션씬이 하나도 없었다.
설레는 러브라인, 짠내나는 서사 한가득
<육룡이 나르샤>는 분이-방원 메인 커플보다 서브 커플인 영회-방지 커플 럽라가 더 화제였다. 연희가 땅새(방지)에게 옷을 선물하던 칠석날. 마을에 닥친 권문세족의 노비에게 연희가 겁탈당하고, 힘이 없던 땅새는 연희를 구하지 못한다. 고향은 불바다가 되고, 자괴감에 빠진 땅새는 마을을 떠난다. 그 후 땅새는 삼한 제일검 이방지가 되고..연희는 정보단체 화사단의 흑첩 자일단 겸 정도전 측근으로 이중세작이 된다. 둘 사이의 럽라는 이후에 시작되는데 연희가 복수하게 되는 서사나 방지가 연희 바라보는 서사가 짠내 넘친다..(스포지만 결말까지ㅠㅠㅠㅠ눙물ㅠㅠㅠㅠ)
점점 변해가는 인물들
50부작답게 긴 서사의 흐름에 맞춰 인물들이 점점 변해간다. 이방원의 경우 종친은 정계에 진출할 수 없다는 정도전의 계획을 알고부터 서서히 변한다. 그가 유일하게 편하게 여긴 분이에게 "이제... 놀이는 끝났어"라며 반말을 하던 분이에게 존댓말을 요구하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이후에 드라마는 이방원의 철혈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는 두문동 방화사건이나 세자 방석을 직접 죽이는 장면을 넣는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하던 이들의 변화를 보다 보면 같이 늙어가는 느낌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왜 변해가는지가 이해가 가서 좋았다. 조연 서사도 대충 쌓은 게 없다. 내 최애 캐릭터 중 하나는 조영규다ㅠㅠㅠㅠ
작가님 인터뷰 보면 계유정난을 그린 '샘이 깊은 물'도 고려 중이라는데 존버 중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드라마 최초의 프리퀄 드라마로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가 2장이다.
1장이 육룡이 나르샤/ 2장이 뿌리 깊은 나무/3장이 샘이 깊은 물이다. 뿌리 깊은 나무도 재미있으니 보실 분은 같이 봐도 좋다.(뿌나는 세종역의 송중기 배우 연기가 찰떡이다) 물론, 둘 중 하나를 본다면? 나는 육룡이 나르샤를 보겠다. 여담이지만, 뿌나보고 육나보면 방지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첨에 집중이 잘 안됐다ㅎ.ㅎ 계속 보다보면 괜춘함.
글에 못 담은 서사와 내용이 너무 많으니까 강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