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도 예약할 수 있다면.

by 수이

죽는 날도 예약할 수 있다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손녀딸(사촌 동생)의 결혼식 이틀 뒤에. 또 다른 손녀딸(내 동생)의 생일 3일 전에.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내뱉는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가 손수건으로 마른 눈물을 찍어냈다. "영희 결혼식 전에 니 할머니 죽으면 어떡해.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야."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만큼 소리 높여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 들어! 할머니 앞에서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하루가 다르게 생명이 꺼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걱정했던 부분이다. 결혼식 직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영희가 언제보다 환하게 웃어야 할 날에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봐. 할머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던 우리들이었기에 그 슬픔은 배가 될 테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할머니는 절대 손녀딸 결혼식을 앞두고 돌아가실 분은 아니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악물고 버텨내실 분이었다. 할머니가 살아온 86년의 인생처럼. 자식들보다, 손자들보다 할머니 스스로를 위했던 날이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가 혼잣말하듯 읊조렸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안 보이나 봐.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데리러 안 오는 거 보면. 할머니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고, 아플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너무 늦게서야 알아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심장이 바늘로 콕콕 쑤시듯 날카롭게 아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서 죽고 싶다던 할머니가, 이제는 응. 아니. 대답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달력에 표시된 영희 결혼식 날짜를 바라보며 하루만 더... 하루만 더....속으로 되뇌며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바라만 보는 것도 너무나 큰 고통이다. 영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한편으론 할머니가 더 이상 버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언제가 되었든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과연 나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일까.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일까.



손녀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면, 분명 할머니는 죽어서도 고통스러워할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 한편에 품었던 그 생각은 나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였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할머니가 짊어진 고통을 고통 속에 바라볼 수밖에.








30년 전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차곡차곡 아껴 모은 돈을 봉투에 담아 상조회사에 일시납 했다.(상조회사가 망하면서 피 같은 돈을 다 날려먹었지만...) 10년 전 평생 살았던 집을 팔아 가장 먼저 결제한 것도 49재 비용이었다.



죽는 날을 예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죽는 날도 예약할 수 있었다면 우리 할머니는 가장 먼저 쌈짓돈을 들고 달려갔을 것이다. 자식들 생일을 다 피하고, 결혼하기 좋은 날을 피하기 위해.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날을 선점하기 위해. 따스한 햇살 아래,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적당히 부는 어느 날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