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준비 말고 사후준비

by 수이


삼촌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내 나이는 고작 일곱 살이었고, 삼촌의 나이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청춘이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비통함을 할머니의 몸이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얼마 뒤 할머니에게 자궁암이 찾아왔던 걸 보면.



암을 선고 받고 아들처럼 일찍 죽을 줄 알았던 50대의 할머니는 조용히 상조회사에 가입을 했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기적처럼 할머니는 암을 이겨냈고, 할머니가 상조회사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30년 동안 비밀리에 부쳐져 있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기 전까진.



2021년 겨울, 평생 부탁이란 건 해본 적 없던 할머니가 나에게 누우런 서류 봉투를 하나를 건네며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그것도 한 껏 어두워진 얼굴을 한 채로. 봉투에 담긴 서류를 꺼내보니 상조회사와 관련된 문서들과 납입 영수증이었다.




- 할머니가 옛날에 가입했던 곳인데, 이 회사가 없어졌대... 한 번 알아봐 줄 수 있겠니? 할머니 아는 사람은 조금 돌려받았다는데...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검색하니 이미 해당 업체는 폐업한 지 오래였다.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묻는 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알아본 결과, 은행을 통해 매달 납부했던 사람들은 일부 환불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금으로 일시불로 납부했던 할머니는 같은 단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준비하셨던 사후 계획은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누우런 서류 봉투를 멍하니 만지작거리던, 허탈한 표정으로 힘 없이 소파에 앉아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왜 난 이 사실을 솔직하게 전달했을까. 두 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실 수 있게, 전액 환불은 아니지만 일부 환불받았어! 외치며, 단 돈 100만 원이라도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지 못했을까? 두고두고 후회되는 부분이다.








10년 전, 할머니는 평생을 바쳐 운영했던 여관이자 집을 팔았다. 명성여관. 00동 233-4번지. 집에 딱 한 번만 데려가주면 안 되겠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빌었던 소원은 00동 233-4번지에 가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명성여관.



그곳은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을 껴안았던 곳이자 남은 두 자식을 악착같이 키워냈던 곳이다. 그리고 6명의 손녀 손자들을 품에 안아주었던 터전이었다. 할머니의 삶 그 자체가 스며든 터전을 팔고 가장 먼저 대금을 치른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의 49재 비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49재는 꼭 치러달라던 할머니. 그 당부를 따라 자식들도, 며느리도, 손주들도 매주 일요일마다 49재를 드리러 모인다. 할머니는 온 식구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49재가 일요일에 맞춰지게 떠나신 건 아닐까? 아니면 중음에 머무시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으셨던 걸까?



어느덧 49재도 단 한 번만 남았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긴 이 마지막시간도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끝과 가까워질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할머니는 우리가 매주 서로를 만나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길 바라셨던 건지도. 노후 걱정보다 사후 준비가 우선이었던 것 처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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