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저귀를 간다.

by 수이

우리는 기저귀를 간다.

나는 아기의 하기스 기저귀를

엄마는 할머니의 금비 기저귀를


5개월 된 아기의 기저귀를 매일 갈아주고 있다. 평소 비위가 약했던 나는 아기의 똥 기저귀를 잘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예상과 달리 시큼한 황금색 변을 볼 때마다 기쁨의 박수를 치며 기저귀를 갈고 있다.



여느 때처럼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문득 할머니를 간호하고 있는 엄마 생각이 났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먹은 것이 없어 묽게 흐르는 탁한 변 앞에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던 엄마. 기저귀를 갈 때면 몸이 축 늘어진 할머니를 힘겹게 옮기느라 오른쪽 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지만, 며칠동안 할머니가 변을 못보면 오히려 더 안절부절못하던 엄마.


엄마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있을까? 내 눈 앞에 누워있는 이 작은 아이처럼,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나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뭐 하고 있냐"는 물음에 늘 "할머니 손 잡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엄마의 마음을. 지금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른,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하나씩 꺼내 들며 영정 사진으로 어떤 게 좋을지 이야기하는 엄마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감히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다고 자부하던 나였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얼마나 오만했던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받아온 사랑의 크기를. 부모에게 자식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상상 이상으로 행복했다. 나의 온몸을 감싸는 이 감격이 혹여나 사라질까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생사?!를 시도 때도 없이 확인했으니 말이다.



잠든 아이의 코끝에 가져간 내 검지에서 숨결이 느껴지는지. 아이의 복부 위에 숨죽여 얹은 나의 손바닥에서 작은 일렁임이 느껴지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크기를.



- 엄마 있잖아,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까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 근데 엄마가 준 내리사랑만큼 내가 보답할 순 없을 것 같아.


- 그치? 내리사랑은 다 못 갚겠지?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엄마는 하루 종일 노모를 돌보며,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이제는 떠나 보낸) 환갑의 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멀리 다음 문턱을 향해 걸어고 있는 듯했다. 엄마와의 간극이 좁혀질 거거란 나의 생각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감히,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엄마도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내리사랑의 힘으로. 마지막 날까지 갚고 또 갚아도 여전히 부족할.



더 열렬히, 더 아낌없이 사랑을 부르짖고 싶다. 아무리 애써도 내가 받은 사랑을 다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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