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owhat Nov 10. 2018

Little work, little girl

[여행에세이] 8화

강을 옆구리에 끼고 직선으로 걷는 걷기는 도심 속 걷기와 많이 다르다. 미로 같은 도심에서 자꾸 아까 본 상점이 또 눈에 띄는 그런 걷기가 아니라, 햇살 아래 물이 빛나고 사람들은 조용히 산책하거나 가만히 앉아있는 그런 풍경이 눈에 어리는 걷기다. 걷다 보면 강을 바라보고 선 카페들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주변은 더 고요해진다.


아르노강을 따라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하던 길, 강둑 풀밭에 의자와 테이블을 아무렇게나 펼쳐놓고 햄버거를 파는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슬그머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늘 한 점 없어 땡볕에 일광욕하는 수준의 뜨거움이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앞에 두고 초록빛으로 빛나는 강과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는 한 이탈리안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왔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피렌체 제1 관광지에 혼자 서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고민하다 카메라를 맡겼다. (사실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이 맞다. 나도 몇번을 고사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괜찮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주고는 저 위에 산 미니아토 교회에 가봤느냐고 묻는다. 안 가봤다고 하니, 저 교회는 도심의 어느 교회보다도 아름다운 곳인데 입장도 공짜라며, 갔다오는데 10분이면 될테니 원한다면 함께 가잔다. 어차피 가보려고 했던 교회인데다,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는 노인에 이끌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따라갔다.


과연, 잠깐의 시간 동안 그는 내게 많은 걸 얘기해줬다. 자기 아들의 인생,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며 사는 자기의 인생, 아들의 연애 등...36살인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지 않기에, '그의 인생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주제의 이야기였다. 그의 아들은 전기공으로 주4일 밖에 일을 안하고, 남는 시간엔 요가를 하거나 기타를 연주한다고 했다.


"Little work, Little money, Little girl"이라며 농담조로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그 'Little'의 삶이 어쩐지 부러워졌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5분쯤 더 걸어올라가면 있는 산 미니아토 교회는 시내의 교회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정성들여 지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교회였다. 높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는 완벽한 그림이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준 팁을 따라 지름길로 내려오니 곧장 산 니콜로 동네가 나왔다. 물론 그가 알려주기 전까진 예정해 두었던 동선에 없던 동네. 좁고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서 작은 로컬 바와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직 해가 다 저물지 않은 초저녁 어스름한 공기 속에, 어디서들 왔는지 모를 현지인들이 벌써 실내건 야외건 가리지 않고 않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식당 한 곳을 골라 앉았다. 천천히 오래 식사를 했다.




파스타를 좋아해서 떠난 이탈리아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간 여행기입니다.구독 부탁 드려요:)


(ps.위 글에서처럼 현지인과 대화하거나 함께 산책하는 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많거나, 외진 곳이 아닐 때만 하셔야 돼요. 특히 낯선 지역을 혼자 여행하고 있다면, 상황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는 선에서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시길 바랄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감동이 강박이 되고 있진 않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