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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은 묘하게 우울하다

0. 프롤로그

by sooowhat Feb 10. 2025

14시간여 만에 유럽에 도착해 에어비앤비 남의 침대에 당연스럽게 몸을 뉘였지만, 사실 거기까지의 여정은 당연스럽지 않았다. 근 2년 만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목적지가 친숙하지 않은 지역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주어진 기회라는 걸 알기에 덜컥 떠났지만, 익숙지 않은 것들 그리고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위험 따위를 염려하느라 비행기 안 11시간은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아니, 여행을 시작하는 날 전까지도 계속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을 끊임없이 신경 썼다. 종국에는 괜히 성가시게 여행을 갈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 원망하기까지 했다. 한때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로 엉망이었다, 당시의 나는.


방향을 상실했었고 어딘가로 향하려 하는 원초적인 목적마저 잃은 채 지내고 있었다. 선택의 결과는 항상 실망 내지 후회였다. 확실한 동기나 근거 없는 선택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서로 모순되며 부딪혔고, 그 가운데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아무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해내던 것들을 더이상 쉽게 해낼 수 없었다. 비행기 환승도, 짐을 챙기고 간수하는 단순한 일들. 이것들이 모두 버겁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여행도 더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걸까. 비우고 홀연히 떠나기보다는 채우고 낑낑대며 떠나느라 신경만 긁었다. 많은 것들이 새롭게 어려웠다.


그렇게 떠났었다. 도착하자마자 주인도 없는 집 문을 우왕좌왕 따고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그 집에서 우선 3주를 머물렀다. 마음이 아이가 된 듯 무거웠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그 또한 무거움도 엷어질 것이라고 다독였다. 뭐라도 써보겠노라며 멀리 멀리 찾아간 그 집의 창가에서,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과 그 밑에 낮게 펼쳐진 지붕들을 눈에 새겼다. 조금씩 어디선가 봤던 것처럼 익숙하고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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