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시차에 맞게 잠이 깨니 신새벽이었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아침. 전날 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침대 위에 창문이 나 있는 줄도 미처 몰랐다. 안경을 끼고 밖을 내다보니 주황빛 지붕을 얹은 소박한 외관의 집들이 한가득이었다. 저 멀리 산자락이 둘러쳐져 있었다.
한국은 한낮이었다. 밤새 밀린 카톡에 답장하기 시작했다. 방 안은 점점 밝아졌다. 해가 잘 들고 천장이 높은 방이었다. 친구 A는 내가 보내준 창 밖 사진이 좋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와 완전히 다른 풍경의 창 밖을 보는 것’이 부럽다는 거였다. 그제야 실감했다. 지금 내 창 밖엔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구나. 여행은 기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아직 덜 뜬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순간 생각과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져 있는 걸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멀리멀리 날아간다고.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 건성의 마음으로 이 장면을 마주했던 것이다. 퍼뜩, 이런 마음 상태로는 지난 한동안 그랬듯 여행 중 꽤 많은 순간을 의식도 못한 채 감흥 없이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일단 그러면 들인 돈이 아까워진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날씨도 궁금했던 차에 얇은 잠옷 위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물씬 느껴졌다. 낯선 지역에 갈 때 아무리 인터넷으로 기온을 확인해도 그곳의 ‘진짜’ 날씨까지 가늠할 수는 없다. 예컨대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분, 하늘의 맑음과 바람의 상냥함의 정도 같은 것들 말이다. 옅은 푸른색 하늘 아래엔 서울의 고층 빌딩처럼 시야에 걸릴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정적인 풍경을 눈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한두 명씩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처럼 창을 열더니 빨래를 걷는 여자, 개를 산책시키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주머니. 누군가의 집 옥상에는 지난 밤 친구들을 초대했었는지 식탁과 의자 따위의 흔적이 널려있었다. 비둘기들이 빨간 지붕 위에서 이 모든 걸 함께 구경했다. 당연하지만 이 낯선 곳에도 사람이 있었고 어제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꼭 새로운 것을 보고 크게 감탄해야만 감흥인 것은 아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