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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N에게, “7년 전 유럽에 왔을 때 이곳에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벌써 7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7년 전 여름, 나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서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 낀 채 잔돈을 던지며 누구나 다 비는 소원을 빌었다. 그때 어린 나를 그토록 자극했던 유럽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꽤나 강렬히 ‘다시 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 감정도 결국 점차 일상에 희석됐다.
가고 싶고 하고 싶으면 ‘간다’, ‘한다’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던 N. 그녀는 중년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생동감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1시간 남짓한 비행 시간 내 옆에 앉아 가면서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내게도 "말하는 습관을 바꾸라"는 조언을 해줬다. 자기도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그림을 시작했다면서, 나 또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용감한 여자’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이라고도 말했다.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낯선 동양인에게 진정성 있는 말을 해주는 그녀가 고마워 꼭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시킨 대로 실천할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내 속에서 사라진 지 너무 오래된 용기나 열정 따위를 다시 더듬거려나 볼 수 있을까 하여 혼자, 멀리 떠나온 여행이었다. 여행 한 번에 단박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잃었던 꿈이 샘솟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일반화 시켜 이야기하는 여행 관련 글들을 싫어한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두오모에 올라 숨 막히는 전경을 마주하는 것이 나를 즉각 ‘힐링’시켜 주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여행은 사실 거의 대부분 환상에 기반한다. 떠나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또 다녀와서 여행을 기억할 때도 상당 부분은 여행 자체가 상징하는 환상 덕분에 실제보다 더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여행은 마법 같을 지언정 완벽한 마법은 아니다. 여행 동안 감정의 색이 매 순간 황홀하게 현현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