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것이 작년 6월 말의 일이다. 물론, 이딴 거지 같은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3년을 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엔 이 회사보다 나 자신이 더 거지같이 느껴졌으므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중간한 대학에서 비상경 문과를 졸업하고 3년 넘게 취업준비생(이라 쓰이지만, 백수라고 읽히는 존재)으로 경력 대신 나이만 쌓아놓은 20대 후반의 여성인 나. 노력 없이 절망만 하던 나. 거지 같은 나.
그런 나를 붙여준 회사였기에 예정되어 있던 타기업의 최종면접 기회를 포기하고 입사를 결정했다. 더는 거지 같은 채로 살 자신이 없었다. 바라고 바라던 대기업은 아닐지언정 꽤 건실한 중견기업쯤은 되니까, 망해가는 산업일지언정 업계에서는 1위라고 하니까, 기업 후기를 찾아보면 하나같이 ‘사람들은 좋다’는 평이 있으니까. 여기서 잠깐 경력을 쌓고 이직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기어코 발을 들이고야 말았다. 이 거지 같은 회사에.
인사팀 주관의 오리엔테이션 교육이 끝나고, 면접 때 보았던 담당 임원이 직접 자리를 안내해 주겠다며 찾아왔다. ‘와, 좋으신 분인가 보다. 역시 사람들은 좋다는 평이 맞았네’하고 생각했다. 그는 종이상자처럼 각이 접힌 채로 굳어있는 나를 데려다가 사무실 한 켠의 작은 회의실에 앉히고는 입을 뗐다. “어우, 여드름이 왜 이렇게 많이 났어?”
‘좆됐다’ 상스러운 세 글자가 떠올랐으나, 사회화가 잘 된 덕에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 ‘아, 욕을 끊고 우아한 어른체로 말하겠다는 다짐은 또 물 건너갔구나. 잠깐, 말로 한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나? 한 김에 더 해야지, 씨발. 미친놈 냄새가 진동을 하네’ 입으로 연신 똥을 싸대며 역겹게 웃는 그의 얼굴에 마주 웃으며, 나는 속으로 온갖 된소리를 반복 재생했다.
표현은 서툴지만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출근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오는 내게 근태를 신경 쓰라며 지적질을 해댔고, 어떻게 커피 한 잔을 안 사다 바치냐며 무안을 주었다. 차장급 이상의 인력이 담당하는 과제 발표에 자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외 출장을 취소당한 일도 있었다. 입사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과제에 대한 파악은커녕 회사 제품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3개월 차 신입사원이, 그룹 계열사 전체가 참여하는 과제 발표에 자원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공권 티켓팅까지 마친 출장을 취소당했다는 말이다. 그는 터무니없는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유치하고 치사하게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나에게는 아무런 고객사도 배정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정확히는 담당 임원의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여 딴짓은 꿈도 못 꾼다는 최악의 자리에 앉아서 반년을 보냈다. 반년을 버렸다.
입사하고 석 달 만에 5킬로가 빠졌다. 생리가 끝난 지 2주도 안 되어 다시 생리가 터졌고, 그다음 두 달은 아예 소식이 없었다(나는 마리아가 아니므로 임신은 아니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은 적이 처음이라 무서워 울기도 했다. 유독 나를 고까워했던 상사-그는 사회화가 덜 되었는지 “좆같다”는 상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이었다-의 이름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업무차 메시지를 보낼 때면 두 줄짜리 문장을 스무 번씩 확인하곤 했다. 나는 다시 거지 같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지 같았던 것은 상사의 윽박이나 담당 임원의 꼬장 따위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였다. ‘내가 너무 사회생활을 못하나? 내가 일을 못해서 일을 안주나? 내가 그렇게 예의 없는 ’요즘 것‘인가? 내가 문제인가?’ 나는 끊임없이 나를 탓했다.
마침내 퇴사를 결정한 것은 작년 연말에 다녀온 그룹사 합숙 교육에서였다. 조별 활동을 주도하는 것부터 처음 보는 계열사 선배들과 말을 섞고 술자리를 즐기는 것까지 어려운 점은 하나도 없었다. 조원들은 내 MBTI가 I로 시작한다는 것에 놀랐고, 지도 선배는 나보고 영업이 체질인 것 같다고 평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못 하거나 일을 못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예의가 없거나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이 회사의 이 팀에서 내가 나인 채로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망가진 건강과 무너진 정신을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버리고 싶어 안달이 난 담당 임원 때문이 아니라,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투명 인간 취급을 하던 상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나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달까.
”퇴사하겠습니다“가 ”퇴사하였습니다“가 되기까지는 고작 2주의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임원은 나의 결정을 응원한다며 퇴사 절차가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응원이 아닌 종용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입사 후 처음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마지막 출근일에도 퇴근 시간까지 꽉 채워 일을 했다. 심지어는 반납한 노트북을 다시 뺏어와 일을 했다. 뺏어왔다는 표현에 과장은 없다.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팀 담당자에게 노트북 가방을 넘기는 순간 업무 확인 요청이 왔고, 그를 불러 세워 가방을 낚아채듯 가지로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마무리해야 했으니까.
손인사 몇 번 휘휘 젓고 일찍이 퇴근해 버린 담당 임원과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에게 가보겠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로비로 내려왔다. 8개월 사이에 끈끈해진 동기들과 송별회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니 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치는데, 사방이 캄캄한 와중에 왼쪽 시야에 하얀 무언가가 ‘반짝’하고 걸렸다. 매화꽃이었다. 매화꽃이 팝콘처럼 피어있었다. 하얗고 작게 피어있는 그 꽃을 보고, 나는 팡파르를 떠올렸다. 봄의 시작을 축하하며 울리는 팡파르. 초록이 만연한 계절이 모퉁이만 돌면 금방이라며 응원하는 팡파르.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축하와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새싹처럼 산뜻해졌다.
어쨌든, 퇴사하였습니다. 모든 직장인의 꿈이라는 퇴사, 그것을 이루고야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