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소중한 동생, 마루
2003년에 우리 집에 찾아와 가족이 되어준 작은 개가 있었다.
이름은 마루
우리는 녀석이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태생부터 순한 성격으로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마루는 우리 집 막내로 16년을 함께 하는 동안
2번의 결석 수술, 1번의 피부 절제술을 받았고
2018년 여름, 심한 감기에 걸린 이후로
급격히 몸이 안 좋아져 버렸다.
결국 평생 심장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끔씩 심장에 물이 차 새벽에 가족 모두가 응급실에 갔던 적도 몇 번 있었고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 엑스레이와 정기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마루는 그 힘든 과정을 작은 몸으로 기특하게 잘 견뎌줬다.
차를 타면서 멀미 한번 한적 없었고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물거나 짖거나 힘들게 한 적도 단 한 번 없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식욕이 떨어지고 잠은 더 많아지고
뒷다리에 힘이 없어 휘청거리는 일도 잦았다.
그때마다 과거 산책을 잘 못 시켜준 것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식욕이 떨어졌을 시기에는
마치 뷔페를 차리듯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죄다 늘어놓고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게 한적 있었다. 차라리 이 정도면 무난했다.
19년 여름부터는 물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료를 물에 개어서 주사기나 수저로 입에 넣어야
간신히 한 끼 먹는 지경까지 왔었다.
억지로 입을 벌리고 목구멍에 음식을 넣어 강제로 먹이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지만
식욕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에 뭐든 먹이는 것이 급급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렇게 잘 먹던 물도 먹지 않는 날이 찾아왔고
탈수 증세가 보이자 매일 아침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종일 입원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데려와 저녁을 먹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보냈다. 그 와중에 예쁘기는 얼마나 예쁘던지...
그리고 11월 4일, 부모님 결혼기념일 기념 촛불을 불고
모두가 잠든 새벽
마루와 함께 자던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거칠고 힘들게 숨 쉬는 마루를 발견했다.
짧지만 길고 숨 막히던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마루가 강아지 별로 긴 소풍을 떠났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회사를 쉬는 날이었고
낮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알아보며 녀석을 보내줄 준비를 했다.
우리 집 하나뿐인 아들 노릇이라도 하듯
부모님 결혼 기념을 함께 축하해주고 간 것만으로도 너무 기특한데
장례를 준비할 시간까지 주고 간 거 같아 마냥 고맙고 미안할 뿐이었다.
마치 잠자듯 눈을 곱게 감은 마루를 옆에 두고
가족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 작은 몸이 굳으며 살이 차가워지고
굳은 몸이 다시 풀어지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생전 처음 보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믿기지 않아서 차가워진 몸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지
발을 만지며 온기가 남아있는지 코에 손을 대고 숨을 쉬는지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영화처럼 시간을 나눠 줄 수 있다면 내 수명이라도 주고 싶은 시간이었다.
장례식장은 경기도에 있는 추모공원으로 정했다.
나나 아빠가 차를 몰고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이곳이 그나마 적합했다.
관계자분의 진행에 따라 난생처음 화장 과정을 지켜보고
온 가족이 너무나 힘들고 가슴 아프게 마루를 보내주었다.
나는 살면서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심하게 울면 좋은 곳에 가다가도 발이 무거워져 못 간다고
우리를 다그쳤던 엄마였는데 가루가 되어 다시 돌아온 녀석을 보고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던 거 같다.
강아지 별에 가서도 가볍게 뛰 놀라고 수의는 입히지 않았고
유골함은 통풍이 가장 잘 된다는 호두나무로 정했다.
그리고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고 함께 놀 친구들이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 마루를 쉬게 해 주고 왔다.
마루가 떠나기 전에 미리 준비할 리스트를 정리했었는데
최대한 많은 것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식구 수대로 점토로 발 도장도 찍어 두는 것은 물론
잉크로 발 도장까지 찍어 발 도장 액자도 주문했다.
그밖에 마루 털, 빠진 이빨, 잘라낸 발톱 등
녀석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사실 아직 마루가 집에 없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마루가 누워있던 마약 방석도 타고 다녔던 캐리어도 그대로이고
내년에 주려고 말린 고구마도 잔뜩 쌓여있고
주인 잃은 옷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정작 마루만 없는 것이 허무할 뿐이다.
이제는 매일 10시에 약을 먹일 필요도
여름에 에어컨을 예약 모드로 맞출 일도
외출하면 빨리 집에 가야 할 일도
여행을 가도 누군가 한 명은 늘 집에 있을 필요도
동물 병원에 갈 일도 매번 큰돈이 나갈 일도 없게 되어
후련하다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도 잠시
보드라운 털과 말랑말랑한 발바닥을
발에서 나는 그 꼬순내를
고구마와 밤은 먹을 때 우렁차게 짖던 그 목소리를
동글동글하고 맑은 그 눈망울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면
내가 더 희생하고 힘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마루는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마루가 떠나고 고맙게도 꿈에 몇 번 나타나 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아팠던 그 모습으로 찾아와 줘서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
더 예쁘고 건강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이후 우리는 다시는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기로 약속했다.
함께 하면서 얻은 기쁨과 감동, 행복이 셀 수도 없이 크지만
떠나보내고 나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을 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은 따뜻하고 고통 없는 강아지 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한없이 부족한 우리를 만나 많이 힘들고 더 많은 걸 누리지 못해서 미안해
그럼에도 우리 집에 와줘서,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안녕, 내 작고 늙은 개 -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 마루
널 잊지 않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