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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곳 Feb 05. 2020

내 작고 늙은 개를 보내며

안녕 내 소중한 동생, 마루 

2003년에 우리 집에 찾아와 가족이 되어준 작은 개가 있었다. 

이름은 마루 

우리는 녀석이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태생부터 순한 성격으로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마루는 우리 집 막내로 16년을 함께 하는 동안

2번의 결석 수술, 1번의 피부 절제술을 받았고

2018년 여름, 심한 감기에 걸린 이후로 

급격히 몸이 안 좋아져 버렸다.  

결국 평생 심장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끔씩 심장에 물이 차 새벽에 가족 모두가 응급실에 갔던 적도 몇 번 있었고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 엑스레이와 정기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마루는 그 힘든 과정을 작은 몸으로 기특하게 잘 견뎌줬다. 

차를 타면서 멀미 한번 한적 없었고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물거나 짖거나 힘들게 한 적도 단 한 번 없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식욕이 떨어지고 잠은 더 많아지고

뒷다리에 힘이 없어 휘청거리는 일도 잦았다.      

그때마다 과거 산책을 잘 못 시켜준 것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식욕이 떨어졌을 시기에는 

마치 뷔페를 차리듯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죄다 늘어놓고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게 한적 있었다. 차라리 이 정도면 무난했다.      

19년 여름부터는 물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료를 물에 개어서 주사기나 수저로 입에 넣어야

간신히 한 끼 먹는 지경까지 왔었다.      

억지로 입을 벌리고 목구멍에 음식을 넣어 강제로 먹이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지만 

식욕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에 뭐든 먹이는 것이 급급했다.      


종일 누워서 쉬던 어르신 시절 


하지만 얼마 못가 그렇게 잘 먹던 물도 먹지 않는 날이 찾아왔고

탈수 증세가 보이자 매일 아침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종일 입원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데려와 저녁을 먹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보냈다. 그 와중에 예쁘기는 얼마나 예쁘던지...      


그리고 11월 4일, 부모님 결혼기념일 기념 촛불을 불고 

모두가 잠든 새벽

마루와 함께 자던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거칠고 힘들게 숨 쉬는 마루를 발견했다. 

짧지만 길고 숨 막히던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마루가 강아지 별로 긴 소풍을 떠났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회사를 쉬는 날이었고 

낮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알아보며 녀석을 보내줄 준비를 했다. 

우리 집 하나뿐인 아들 노릇이라도 하듯 

부모님 결혼 기념을 함께 축하해주고 간 것만으로도 너무 기특한데

장례를 준비할 시간까지 주고 간 거 같아 마냥 고맙고 미안할 뿐이었다.      

마치 잠자듯 눈을 곱게 감은 마루를 옆에 두고  

가족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 작은 몸이 굳으며 살이 차가워지고 

굳은 몸이 다시 풀어지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생전 처음 보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믿기지 않아서 차가워진 몸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지

발을 만지며 온기가 남아있는지 코에 손을 대고 숨을 쉬는지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영화처럼 시간을 나눠 줄 수 있다면 내 수명이라도 주고 싶은 시간이었다.      


마루의 납골당 - 좋아하는 간식과 인형, 담요를 함께 넣어주었다. 


장례식장은 경기도에 있는 추모공원으로 정했다. 

나나 아빠가 차를 몰고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이곳이 그나마 적합했다.      

관계자분의 진행에 따라 난생처음 화장 과정을 지켜보고 

온 가족이 너무나 힘들고 가슴 아프게 마루를 보내주었다. 

나는 살면서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심하게 울면 좋은 곳에 가다가도 발이 무거워져 못 간다고

우리를 다그쳤던 엄마였는데 가루가 되어 다시 돌아온 녀석을 보고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던 거 같다.      


강아지 별에 가서도 가볍게 뛰 놀라고 수의는 입히지 않았고 

유골함은 통풍이 가장 잘 된다는 호두나무로 정했다. 

그리고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고 함께 놀 친구들이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 마루를 쉬게 해 주고 왔다.      

발도장 액자를 만들기 위해 찍어둔 발바닥 -


마루가 떠나기 전에 미리 준비할 리스트를 정리했었는데

최대한 많은 것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식구 수대로 점토로 발 도장도 찍어 두는 것은 물론 

잉크로 발 도장까지 찍어 발 도장 액자도 주문했다.

그밖에 마루 털, 빠진 이빨, 잘라낸 발톱 등

녀석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사실 아직 마루가 집에 없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마루가 누워있던 마약 방석도 타고 다녔던 캐리어도 그대로이고

내년에 주려고 말린 고구마도 잔뜩 쌓여있고 

주인 잃은 옷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정작 마루만 없는 것이 허무할 뿐이다.      


이제는 매일 10시에 약을 먹일 필요도

여름에 에어컨을 예약 모드로 맞출 일도

외출하면 빨리 집에 가야 할 일도 

여행을 가도 누군가 한 명은 늘 집에 있을 필요도

동물 병원에 갈 일도 매번 큰돈이 나갈 일도 없게 되어 

후련하다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도 잠시      


보드라운 털과 말랑말랑한 발바닥을

발에서 나는 그 꼬순내를

고구마와 밤은 먹을 때 우렁차게 짖던 그 목소리를

동글동글하고 맑은 그 눈망울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면 

내가 더 희생하고 힘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마루는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마루가 떠나고 고맙게도 꿈에 몇 번 나타나 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아팠던 그 모습으로 찾아와 줘서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

더 예쁘고 건강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이후 우리는 다시는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기로 약속했다. 

함께 하면서 얻은 기쁨과 감동, 행복이 셀 수도 없이 크지만

떠나보내고 나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을 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은 따뜻하고 고통 없는 강아지 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한없이 부족한 우리를 만나 많이 힘들고 더 많은 걸 누리지 못해서 미안해

그럼에도 우리 집에 와줘서,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안녕, 내 작고 늙은 개 -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 마루 

널 잊지 않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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