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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현 Oct 14. 2015

퇴원을 하면서

9박 10일 휴가를 끝내면서

2004년 3월 2일 소위 임관

2005년 3월 2일 중위 진급

2006년 6월 30일 중위 전역

2006년 7월 1일 창원 삼정자초등학교 발령

2007년 1월 27일 결혼

2008년 2월 12일 첫째 건우 출산

2009년 10월 28일 둘째 민서 출산

....

2015년 10월 7일 오후 5시 배구 경기 도중 발목 골절로 인한 입원

2015년 10월 15일 오전 퇴원


대학교 졸업 이후

지금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다.

군대생활, 결혼, 육아, 학교

물론 방학 때 연수를 안받는 때도 있었지만

아침 저녁 육아를 해야겠기에 남편 역할도 해야 했기에


그때는 오전 오후라도 낮잠이라도 자면 쉰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쉰 게 아니었다. 잠시 숨 돌린 정도?


9박 10일을 입원하며 오로지 나만 돌보고

내 몸을 위해 최선을 위했더니

여러 가지 보이지 않던 게 보이더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는지

감이 오더라.


입원 이전의 내  우선순위는

1. 가족

2. 학교

3. 취미(음악)

이랬다.


그래도 가족이 가장 우선이고  그다음이 학교 일이었고

그다음이 나를 위한 취미(음악이든지 뭐든지)였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입원하고 보니 학교일은 나 아니라도 다 돌아가는 거더라

승진 점수를 안 모으기로  결심했더니 학교일이라는 건

부질없더라.

교장 교감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일 잘하는 학교 선생이고 싶었는데

그 욕심을 놓았더니

학교일은 그저 문제가 없게만 때우면 되는 일 같더라.

내가 안 행복한 학교 일은 안 하고 싶더라.

지금 내가 학교에 없으니

몇 선생님 스트레스 약간 받으시지만..

발목을 잘못 다쳐 한 학기를 못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학교더라.


그런데 일주일 입원하니

아내가 몸살이 났다.

7살, 8살 딸내미, 아들내미 이번에 날씨 좋은 주말 놀아주겠다고

혼자 대구도 다녀오고

나 혼자 있다고 신경 쓰고 애들 신경 쓰고

애들 소풍 간다고 도시락 싸고

그래 몸살이 날만 하겠더라.

내가 없으니 안 되겠더라.


내가 이렇게 쉽게 발목이 부러지는데

목숨도 이렇듯 허무하게 사라질 것 같데?


그래서 나를 좀 더 소중하게 대하기로 했다.


우선순위 변경이 되었는데

1. 가족

2. 취미(음악) (+1)

3. 학교 (-1)


이렇게 순위를 변경시켰다.


누가 욕할지 모르겠는데

다음부터는 학교일은 학교일 잘하는 선생님이 하시고

그분들께 학교 운영을 하시도록 하고


나는 그저 학교일은 내 행복을 위한 것만 골라하고

내가 하기 싫은 학교일, 그리고 안 하면 안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예전엔 교장, 교감 선생님, 선배 선생님들이 부탁하면 뭐든지

예스맨이었는데

다 부질없다는 걸 느꼈다.

이제 예스맨 안 할 거다.

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하고

남에게 미루더라도

좀.. 욕먹어도

하기 싫은 일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하고

내 마음, 내 가족만 생각만 하면서 살 꺼다.


그렇다고

학교일을 모두 다 대충 때운다는 게 아니고

학교를 위한 일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할 방법을 찾는 거고


학급, 아이들을 위한 일은..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할 거야.

나를 만나는 아이들이 나 때문에 좀 더 행복했으면 하거든

학교에서 담임을 하든 전담을 하든

아이들을 중심으로

재미있게 생활하고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아직 어리바리지만... 그러려고...


내가 항상 말하는 꿈이 있는데
20년 뒤쯤에 내가 가르친 제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피구 축구 줄다리기 노래자랑 하는 축제를 여는 거야
운동장에 2006년 삼정자초 4-2 2007년 진동초  5-2....
이런 식으로... 텐트가 따로 있는 거지 그럼 게네들끼리 반창회 하는 거야.
나는 하얀 모자 쓰고
운동장 앞 텐트 아래에 앉아서 애들이 줄 서서 인사 오면
한잔씩 건배하고
옛날 추억  이야기하고
우리 사진들 보면서 깔깔 웃고
그때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 초대해서
같이 노래도 하고
축제를 여는 거지
하는지 안 하는지... 20년 뒤에 보자고. ㅋ
매년 애들하고 매일  이야기하는데
생각만 해도 신남.
....


내 머리 속 한편에는

항상 죽음이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려고


내일 죽는데

학교 공문 처리하고 기안 올릴 시간이 어디 있느냐 말이야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멋진 공연을 하고

옛날 제자들과 만날래


이제부터 정말.

그렇게 살래.


문병온 5년 전 제자 소민이랑~^^

수술한 내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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