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음원 만들기
2017년 겨울 이가현과 공연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였다.
내가 물었다.
“가현아 음원이나 하나 낼까?”
“그래요.”
“이미 만들어 놨던 노래 중에 내면 좋겠는데 어떤 노래를 내면 좋을까?”
만들었던 많은 곡을 떠올려봤다.
노래 좋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지만 앨범은 내지 않은 노래.
아식스 배구화가 생각이 났다.
가현이도 흔쾌히 좋아했다.
“편곡을 누구에게 부탁할까?”
나는 음악과 관련한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내 선생님은 책,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카페였다.
내 대부분의 음악 경험은 수요일밴드 음악 경험이 전부다.
그렇게 엉성한 실력을 갖고 수요일밴드가 음원 발매한 노래 중 대부분은 내가 작사 작곡 편곡 녹음 믹싱 모든 작업을 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도움을 부탁할 곳도,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노래들이 잘 빠졌다.
그렇게 싱글 혼자, 직업병, 빨래, 사과송X슬리퍼가 좋아, 나쁜 선생님, 세상을 바꾸는 교실을 발매했다.
그렇게 혼자 작업하는 것에 아쉬움이 있던 중에 꾀를 냈다.
편곡, 녹음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마그였다.
창원에서 1인 락 밴드를 하는 마그(정성헌)에게 편곡, 녹음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탁해서 만든 노래가 ‘우유 가져가’다.
마그는 1인 락밴드로 깔끔하고 세련된 음악을 하는 친구다.
“니 멋대로 편곡해줘”라는 주문에 마그는 마그 스타일로 정말 시원한 우유가져가를 만들어 냈다.
이 인연을 계기로 마그와 함께 ‘우유 가져가’, ‘분홍비’, ‘뜯어버렸어’ 작업을 했다.
이번에도 마그와 할까? 하던 차 트레바리가 생각이 났다.
트레바리는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 창원으로 내려와 활동을 하는 2인조 락 밴드다.
최근 정규 앨범을 냈고, 홈레코딩 실력도 갖추고 있으니 한 번 믿고 부탁해 보면 또 다른 느낌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트레바리 리더 이충만에게 바로 전화했다. 아까 이가현과 공연을 하고 내려오던 길이였다.
충만이가 흔쾌히 좋다고 한다.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충만이에게 아식스 배구화 코드 악보와 동영상을 보내주고 마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네 멋대로 편곡해줘’를 주문했다.
그렇게 2월이 넘어가고 충만이가 보내준 아식스 배구화 데모를 보내줬다..
기타와 드럼을 라이브로 폰으로 녹음한 것이라 여러모로 좀 어색했다.
헌데 믿었다.
왜?
트레바리의 노래들은 한결같이 좋으니까.
대략 편곡이 끝난 상태에서 트레바리와 처음 만나서 편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함께 작업했다.
이후 거의 완성된 MR을 받았는데 진짜 쩔었다. 이게 수요일밴드라고? 생각을 할 정도로.
이후 보컬 이가현이 거의 4회에 걸쳐서 트레바리 작업실에서 녹음을 했다.
(노래 하나를 네 번씩이나 녹음한 것은 처음이다.)
나중에 충만이가 코러스까지 넣었고, 트레바리의 앨범을 믹싱 했던 GoldieWatch가 믹싱을 도와줬다.
그렇게 음원은 완성이 되었다.
사람들이 앨범을 낸다 하면 음원만 생각하는데 음원만큼 앨범 커버도 중요하다. 마침 음원이 완성될 무렵 즘에 페북에서 유루시아 선생님이 그린 김윤아 그림을 봤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흔쾌히 요청을 수락하셔서 바로 노래 데모 버전을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한 시간 있다 답장이 왔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원하던 그런 느낌이었다.
다만 배구화가 발목까지 오니 발목까지 오도록 그려주라고 부탁을 드렸고
페북 메신저로 소통하면서 아래의 앨범커버를 완성했다.
캘리그래피도 유루시아 선생님이 직접 써 주셨다.
앨범을 소개하는 글이 '앨범 리뷰'다.
초반에는 내가 직접 글을 쓰다가 나중에는 거의 앨범 리뷰를 부탁했다.
이번엔 누구에게 부탁을 해볼까? 고민하던 차 '학교에는 왜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저자 김현희가 떠올랐다.
김현희는 오프라인에서는 서울에서 잠깐 얼굴 본 정도였지만 온라인에서는 되게 친한 친구다. ㅋㅋㅋㅋㅋㅋ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해 준다고 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렇게 부탁을 하고 앨범 리뷰를 받았다.
현희만의 경험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좋은 글이다.
앨범 리뷰는 아래와 같다.
'A6 배구화': 기억에 색을 입힌다 - 김현희(SickAlien)
왜 하필 배구화인가. 초등 교직 사회 배구 문화를 학교 문화 정치의 프레임으로 비판해 온 나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딱 한 번만 들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곡이 끝나면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아마추어 밴드의 어설픈 연주 실력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일단 기타 인트로를 듣고 깜짝 놀랐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는 몹시 탄탄했다. 보컬은 청량하고 부드러운 매력이 있다. 후렴구는 흩날리는 벚꽃 같았다. 진부하다면 진부한 그림인데 이상할 정도로 추억을 자극하는 그런 느낌이다.
가사는 우연히 차에서 전 남친의 배구화를 찾은 여자의 이야기다. 이 참에 연락이나 해볼까 싶어 들어가 본 전 남친의 인스타에서 새 여친의 사진을 보게 된다는 가사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담이지만 난 사실 배구를 정말 못한다. 교대 4학년 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본 배구 실기 시험은 악몽 같은 기억이다. 그때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운동장에 나가 아빠와 연습을 했다. 나는 불안과 짜증의 도가니로 기억하는데 아빠는 지금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얼마나 투덜대며 운동장에 갔는지, 배구공을 붙잡고 어떻게 풀이 죽어있었는지, 가까스로 시험에 통과한 날 어떤 목소리로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는지 재미있다는 듯 말씀하신다. 난 그때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며 투덜대고는 했다. 수요일 밴드의 노래를 듣는데 슬그머니 그때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다 큰 딸과 운동장에 나가 공을 붙잡고 벌인 사투가 아빠에게 어떤 기억일지 보인다.
수요일 밴드의 노래는 사람들의 기억에 색을 입힌다. 개개의 삶에는 문화 정치의 프레임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한숨과 웃음 같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프레임 속에 갇힌 점들이 아니라 뼈와 살이 있고 피가 흐르는 진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삶은 진부하고 특별하다. 그 진부한 특별함을 흔적으로 남기는 것이 예술이라면, 수요일 밴드는 완벽하게 그 일을 해내고 있다.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